기회 불평등과 학벌 카르텔에 대해
'지방대' 라는 지칭에 왜 화를 낼까?
오늘은 수능이 있는 날이다. 수능이 있는 날에는 학교 앞 경적소리도 비행기 이착륙도 지연되는 시간이 있다. 그것은 언어와 외국어 영역 듣기 평가가 있는 시간이다.
이러한 풍경은 수년이 지났지만 매년 이어지고 있다.
왜 이러한 풍경은 반복될까?
더불어 수능을 '인생 최대의 시험'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건 또 왜 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학벌 주의와 집단 카르텔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배움의 확장의 공간이 아닌 계급의 획득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 안에 기회나 평가가 얼마나 적고 불평등 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비단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대학을 진학과 졸업 이후에도 수도권대인지 아닌지 스카이대안지 아닌지 지방대인지 아닌지에 따라 또 다른 차별과 구분, 기회의 폭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 진학 여부와 더불어 대학 간 차별과 학벌주의는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더불어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자신이 나온 대학을 '지방대' 라고 말해 경희대 재학생과 졸업생으로부터 많은 항의와 정정 요구를 받아 논란이 되었었다. 왜 그들은 '지방대' 라는 표현에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지방대가 아님에도 '지방대'라고 칭해서 일까? 아니면 그들이 갖고 있는 지방대에 대한 차별 인식과 소위 수도권 대학이 누리고 있는 학벌 자부심에 손실을 주어서 일까?
아마도 예상컨대 이 두 가지 이유가 함께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지방대'라는 표현이 분노를 일으키거나 소위 대학 내 또 다른 혐오의 표현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방대'라는 표현과 지방대가 분노를 유발할 그 어떤 이유도 없으며, 지방대 생들은 어떻게 보면 불평등한 기회와 인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있고, 소위 수도권대 학생들과 같은 학문의 내용을 배우고 연구를 하고 있으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사례에서 보듯 '지방대' 라는 표현조차 일종의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지방대가 아니라는 인식과 그들이 갖고 있는 우월 의식의 바탕이 되는 사회 인식과 구조 때문이다.
기회가 불평등하고 적을 수록 더 많은 차별 지점을 만들려고 하고 그 안에서 획득한 인식과 집단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고졸에서 대졸로 수도권대와 지방대로 수도권대와 스카이대로, 대졸과 대학원 졸업으로 끝임없이 그차별의 잣대와 집단 권력의 이동을 해 온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이러한 부분이 하루 속히 개선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작이 언제든 가능해야 하고 기회와 배분의 불평등과 불공정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수능 날을 맞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기회 불평등과 학벌 카르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늘 수능을 본 수험생들은 얼마 후면 시험 결과를 받을 것이다. 다만 제발 부탁하건대 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실망하거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끊는 일은 없길 바란다. 매년 수능 이후 수험생의 자살 소식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모든 수험생들 모두 수고 많았다는 말로 맺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