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물 좀 주세요

by 서단 정선옥




"2만 명이라고?"

"전체 희생자의 20퍼센트가 한국인이었다고?"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에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히로시마에 간다고 했을 때 좀처럼 끌리지 않은 이유가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평화공원의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피해의 참혹함에 가슴이 아파왔다.

가장 큰 충격은 "human shadow"라는 전시물이었는데 돌계단에 검은 그림자 자국이 남아있는데 놀랍게도 사람이 폭탄에 노출되면서 그림자만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 돌계단이었는데 앉아서 은행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분이라고 한다.



1945년 폭발당시 히로시마에는 약 25만 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초기 폭발로 7만 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또 다른 7만 명은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갔다고 한다. 피폭자들의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 목격자들의 증언을 보거나 들을 수 있었는데 한결같이 사망자들은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갔다고 전한다.

폭탄에 노출되면 몸속의 수분이 증발해서 어떤

시체는 끌어올리면 스르르 부서졌다는 증언들이 쏟아졌다. 그들이 죽어가며 애타게 물을 찾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래서 평화공원 추모비에는 많은 생수들이 올려져 있다.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히로시마에는 5만 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경남 합천에서 온 강제 징용자였다. 그중 최소 2만 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인이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귀국 후 원폭 후유증과 빈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들은 피해자임에도 주목받지 못했고 도움받지 못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평화공원 내에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다. 1970년대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히로시마 본부 주도로 건립되었고 높이는 5M이고 한국에서 제작한 뒤 히로시마로 옮겨 세워졌다.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도 도움 받지 못한 그들에게 생수 한 병과 위로의 마음을 담아 고개 숙여 참배했다.



2025년 1월 히로시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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