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아침

by 서단 정선옥

"췌장 쪽에 혹이 보여요!"

"....."

"크기는 1.2cm이고 췌장 몸통 부분에 있네요"

"......"

"종양 여부는 CT 찍어 봐야 알 수 있어요.

영상학과 스케줄을 알아볼게요"


내 눈앞에 흑백의 초음파사진중에 둥글둥글한 흰색 부분을 가리키며 그녀는 열심히 설명 중이다.

"이게 무슨 소리이지?"

"설마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다고?"

잠시 얼이 빠진 상태에서 정신을 차려

"물혹 아닐까요? "라고 되물었다.

"모르겠어요!"라고 하며 그녀는 연신 컴퓨터를 두드리더니만 아침 10시나 돼서야 CT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건강 검진과 골다공증 관리를 받고 있는 병원의 의사인 그녀에게 한 달 전쯤에 전화가 왔다.

콜레스테롤 수치, 공복 혈당 수치와 더불어 간수치가 비정상적이란다.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병원 예약을 권하는 전화였다.

얼굴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보는 그녀와는 벌써 10년의 인연이다.

살짝 과잉진료가 연상되는 그녀였지만 나는 딱히 그녀가 싫지 않다.

누가 내 몸을 그리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오버해서 보고해 준단말인가?!!

친정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내게 별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실비보험도 가입해서 부담도 그리 크지 않다.


병원 예약하루 전 날 저녁부터 물 한 모금 안 마신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아침 7시 30분까지 병원으로 갔다.

곧바로 팔을 걷어붙여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채혈하고 종이컵으로 소변도 받아 제출하고 상의를 올려 복부 초음파까지 찍고 진료실로 돌아와 그녀 앞에 앉으니 8시 10분이다.

여기까지는 2년마다 항시 하던 일이다.


후다닥 집으로 가서 맛있는 식사와 커피를 마실 생각에 의자에 반쯤만 몸을 싣고 건성으로 앉아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그녀는 59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암 일수도 있으니 10시까지 기다려서 CT 찍으라는 것이다.


"그럼 밖에 나가 아침 먹고 들어올게요"


"아니요. 공복상태 유지 하셔야 돼요"


약간은 멍한 기분이지만 배도 고프고 그냥 덤덤했다.

그런데 내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건 그녀의 표정 때문이다. 10년 동안 항상 사무적이었던 그녀가 긴장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더군다나 보호자 전화번호까지 요구한다.


"이리 와서 누워계세요. 수액 맞고 조영제 알레르기를 줄여주는 약도 맞으셔야 해요"


간호사의 안내로 입원실 병실에 들어서니 좁은 공간에 침대가 보인다.

병원으로 오는 버스에서 핸드폰 쇼핑으로 봄옷을 한참 고르고 있었고 다음 날 가족 모두와 오랜만에 영화를 본 후에 "점심으로 무얼 먹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는 덩그러니 침대 두 개만 놓여있는 입원실이 몹시도 낯설다. 마치 4호선 전철을 타야됐는데 2호선 전철로 잘못 탄 것처럼 당황스럽다.


입원실에 누워 CT를 찍는 10분을 제외한 4시간 동안 내 손에는 핸드폰이 떠나지 않았고

검색어는"췌장암"이다.

폰에는 많은 정보가 넘쳐났지만 그리 좋은 글은 없다.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며 가장 고통스러운 암이란다. 초기 증상으로는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생기면서 당뇨와 복부 통증이 자주 느껴진다고 하는데 요즘의 나의 증상과 일치한다.


"만약 암이라서 곧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무얼 어떻게 하여야 하지?"

뭐라 설명할 수 없게 막막하면서 나의 평정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은 가장 깨어있는 시간이며 하루의 일과 중에 가장 집중해야 할 것들을 한다. 그래서 누워서 티브를 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건 금기사항이다. 고로 나는 철저히 아침형 인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 하고 풍랑 속에 흔들리는 배를 탄 것처럼 마음이 이 쪽 저 쪽 일렁거리며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남편은 어떨까..?"

곰곰 생각해 보니

나의 죽음이 그들에게 영향을 안 미쳤으면 좋겠고 그들이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최대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일상을 유지해야 하나?

그리고 내가 꼭 하고 싶은 게 무얼까?

요즘 미술이나 영어 공부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계속

그럴 수 있을까?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은 만나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는데 CT판독 들으러 진료실로 가야 한다며 족쇄처럼 연결되어 있던 링거 병을 제거해 준다.


4시간 전에 앉아있던 의자에 똑같이 앉아 그녀와 다시 마주 보고 있다.

"암세포가 아니라 물혹과 점액이 섞여있는 낭종이네요."

" 6개월 후에 추적 검사로 크기를 확인하고 앞으로 정기적인 검사를 해야 돼요."

그녀의 표정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한마디 덧붙인다.


"암 표지자검사와 혈액 검사 결과는 며칠 뒤에 전화로 알려드릴게요. 안심하셔도 될 거 같아요"


그녀의 말들은 잘못 탄 2호선을 내려서 다시 4호선으로 바르게 갈아탄 것처럼 안도감을 주었지만

마구 흔들렸던 아침의 여운은 길게 이어졌다.


얼마 전에 "죽음계획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제목에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고 계획을 세워야 되지 않을까?라는 필요성만 느낀다는 미완의 글이다.

어쩌면 이번일로 계획을 세우는데 한발 다가섰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은 미루지 말고 바로, 바로 하고 살자."

"보고 싶은 사람들은 연락해서 만나면서 살자"

"돈도 모으려고만 하지 말고 잘 쓰자"

"힘들어도 일상을 유지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2025년 2월 마지막 날 흔들리는 아침은 나를 성장시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