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하하하~~"
"호호호~~~ "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고 있고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미술 시간이었고 아이들이 한 명씩 나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교탁 위에 올려놓으면
선생님은 멀찍이 앉아서 그림을 보다가 점수를 부르면서 교무수첩에 바로 적는다.
100점 만점에 80점을 차지하는 미술 실기 시험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점수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하고 앉아있다.
마침내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점수를 받고 나서야 내 순서가 되었고
나는 쭈뼛쭈뼛 걸어가서는 내 그림을 올려놓았다.
그 순간 아이들은 갑자기 박장대소한 것이다.
선생님도 그림을 보는 순간 싱긋 웃으시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A-!!! “라고 크게 외치신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평균 점수 이상으로 실기점수를 받아보긴 처음이다.
순간 아이들도 웃기를 멈추고 어리둥절해했다.
어리둥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선생님의 평은 이러했다.
“아주 재미있게 열심히 그렸자나?!!!”
선생님은 정확하셨다.
아주 재미있게 열심히 그리긴 했다.
미술 실기시험 주제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인물화였다.
나는 고민만 하다가 차일피일 시간이 지나갔고 마침내 시험 전 날 잡지책을 뒤져서 좋아하던 배우의 사진을 찾아내어 의기양양 붓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금발의 머리와 푸른 눈동자의 서양 배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그리는데 자꾸 만화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 자주 그렸던 만화가 연상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멋지게 노래하는 그를 떠올리면서 눈, 코, 입과 머리색까지 색칠하고는 완성의 기쁨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스케치북의 인물은 만화 속 왕자님 그대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그렇다고 다시 그릴 시간도 없었다.
학교에 와보니 엄마. 아버지, 언니, 동생을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고 부모님 얼굴 속 주름까지 잘 표현한 아이들도 있었다. 친구들의 그림을 보며
기가 죽어서는 형편없는 점수를 예상했다.
그런데 뜻밖에 재미있어하며 그린게 역력하다는 이유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아쉽게도 그 만화 사건의 후한 점수는 한 번의 에피소드로 끝났다.
음악, 미술, 체육, 가사 모든 실기 과목에서 나는 겨우 평균점수 정도를 유지했다.
그래도 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합창실로 갈 때에는 항상 앞장서서 갔고 체육시간에도 성실했으며 가사 시간에는 즐겁게 요리하고 예쁜 천을 골라 옷을 재단했다.
잘은 못했지만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입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얼마나 잘 그리나? 가 아니라 얼마나 즐겁게 그리나?
누구보다 잘 부르나? 가 아니라 얼마나 조화롭게 부르나?
제일 잘 만드냐? 가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만드냐? 로평가한다면
난 아마도 ALL A였다.
풋풋했던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거쳐 직장생활과 육아를 하면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우연한 기회에 배웠던 사진 찍기가 유일한 나의 예술 활동이었는데 그것도 시들해질 무렵
동네 문화센터에 "어반 스케치"라는 강죄를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갈 때마다 즐거운 발걸음으로 나서지만 결과물은 남들보다 못하다.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과 남들보다 안 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림은 후자의 경우인가 보다.
(쉽게 이야기하면 똥손이다.)
그래도 내가 슷슷 긋는 선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은 너무 기쁘다.
더군다나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그림으로 변신시키는 과정은 너무 즐거운 작업이다.
그러나 아직 실력은 많이 부족해서 쩔쩔매고 있으면 선생님이 뒤에서 지켜보다가 살짝 도와준다.
선생님의 손길이 스쳐간 그림은 퀄리티가 달라진다. 비록 샘의 손길로 완성된 그림이지만
집에 와서 보고 또 본다.
언젠가는 혼자서도 완성시킬 수 있길 바라며
매주 한 번씩 물감, 붓, 스케치북, 4B 연필을 포함해서 미술용품을 바리바리 싸서 집을 나서는 나는
이미 마음은 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