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공간

정자 이야기

by 서단 정선옥


“정자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실까?”


주말 이른 아침 이제 막 일어난 남편에게 묻고 있다.

아침 일찍 받은 카톡 메시지 하나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아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조용한 공간과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파트 로비를 나와 오른쪽 벚꽃나무 길을 지나 배롱나무로 둘러싸인 커뮤니티 건물로 올랐다.

아직 겨울의 끝이라 벚꽃도 배롱나무도 볼 수 없지만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에스자로 꺾인 작은 나무 계단으로 오르면 정자가 보인다.


가끔은 정자에서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도 없다. 나무 계단을 다아 오르니 매화나무로 둘러싸인 정자가 보인다.

정자 주변 매화나무는 올해 유달리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작년 이맘때 같으면 벌써 매화꽃이 한창이고 향기도 진할 때인데 이제야 꽃망울만 한가득이다.

정자에 오르니 빽빽이 단지로 둘러싸인 아파트가 보인다. 우리는 한 모퉁이에 앉아 집에서 내려온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함께 온 강아지에게 간식을 준다.

특별히 나눌 이야기는 없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소나무, 매화나무와 함께 있으니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가슴 한가득 가지고 왔던 근심, 걱정을 풀어놓는다.

조금 전에 받은 카톡의 주인은 40년 지기 선배 언니의 메시지이다. 일 년에 두어 번 만나 회포를 푸는 사이이고 지난번 만남에서는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 걱정이 주된 이야깃거리였는데 카톡 메시지는 놀랍게도 남편의 부고장이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부모님이 아닌 남편이 맞았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부모님과의 사별도 감당하기 힘든데 남편과의 사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언니의 아픔이 내게로 그대로 옮겨온 듯이 마음이 혼란스럽다. 햇볕을 쏘며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노라니 진정이 된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의 두터운 손이 보이길래 슬그머니 잡아 보니 따스한 온기가 전달되어 와서 내 심장까지 따스해진다. 죽음과 이별은 누구나 겪을 일이고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지만 미리 걱정해서 끌어안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남편은 아직 내 옆에 있고 바람은 산뜻하고 매화 꽃망울이 지천이고 커피가 맛있는

아름다운 봄날인데!


조금 일찍 남편을 떠나보낸 언니를 위로할 방법이나 찾아봐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보따리장수가 물건들을 풀어놓았다가 다시 주워 담듯이 풀어놓은 마음들을 주섬 주섬 다시 챙겨 정자를 내려오는데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어쩌면 사별의 고통은 한 번에 떨쳐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관을 나와 10여 분만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아파트 정자는 일상을 벗어나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회복의 공간이다.


주변 신축아파트 스카이라운지의 세련과 쾌적함도 힐링되는 순간들이지만 사면이 트여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인 정자가 주는 치유의 능력은 없다.

10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14년을 키웠던 반려견 하늘이가 사경을 헤맬 때도 나는 종종 정자로 향했었다.


일주일 뒤 두 번째 반려견 시루와 다시 찾은 정자에는 드디어 매화가 활짝 펴서 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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