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동시 다발 산불 발생으로 산불 경보의 ”경계/심각“발령에 따라 다음과 같이 통제하오니 많은 양해 바랍니다”
우리는 왁자지껄 웃으며 걷다가 산림욕장 앞에 써놓은 글귀를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하려고 출발 신호만 기다리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안내 방송을 들은 기분이다.
못 믿겠다는 듯이 우리를 제지하는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아도 오늘은 산림욕장 입장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통제라니?”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날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우리 모두 한 마디씩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반발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마침내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산불의 여파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거의 열흘이 넘도록 티브 뉴스 속 아나운서는 격앙된 목소리로 피해 상황을 보도했고 경남 산청에서 시작되어 하동, 의성으로 퍼진 이번 산불의 피해 규모는 서울 면적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며 인명피해도 삼십 명이 넘는 우리나라 역대 최대규모라고 한다.
사람들의 걱정도 깊어서인지 기부금 액수가 세월호 사건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창 꽃이 피어오르고 연 녹색의 이파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부드러운 공기를 가르며 걸을 수 있는 동네 산책길마저도 산불 경보 발령으로 통제된 것이다.
붉은 불기둥이 산줄기를 타고 넘실대는 티브 속 영상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슴속에 꽁꽁 묶어두고 꺼내보지 않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1970년대 이야기이니까 50년이 훨씬 넘는 기억이지만 그날의 햇살과 아우성 그리고 누군가가 뛰어들어가 안고 나오던 어린 여자아이의 눈동자는 선명하게 기억난다.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흐려지지 않는 기억이다.
그 시절 건설회사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지방 근무가 잦아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시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께서는 사나흘 정도 머물다가 가셨는데 그 기간은 오빠들과 나에게는 축제 같았다.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었고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도 찍고 남매들 각자 가지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아버지는 별말씀 없이 사주시곤 했다.
특히 엄마와 아버지 두 분이 함께 시장에 가서 장을 푸짐히 봐가지고 오시곤 했는데 그 시장데이트에는 막내인 나를 동행 할 때가 많았다.
그날도 꽤 큰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을 사고 있었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우리는 정확한 이유도 모르면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방향 감각을 잃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멈추어 선 곳은 닭을 튀겨서 파는 치킨집 앞이었다. 가스통이 터지면서 불이 난 것으로 기억하는데 치킨집들이 일렬로 늘어선 골목에 벌건 불기둥이 보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번져나가는 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갔다. 젊은 남자 같았는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몇 분 후에 어린 꼬마를 안고 나올 때에는 참혹한 그들의 모습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아버지가 그 순간 빠르게 나의 눈을 가렸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든 게 보였다.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를 아빠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안고 나오는데 살점이 화상으로 녹아서 옷과 함께 붙어있었고 눈동자는 회색빛이었다.
온전한 상태에서 뛰어 들어갔던 남자도 머리카락은 다아 그을려서 동글동글 머리에 박혔고 살점도 입고 있던 옷도 거의 다아 그슬렸다. 그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신문이 오길 기다려서 화재 사건을 찾아보았던 건 기억이 난다. 사건은 아주 조그맣게 보도되었고 안타깝게도 가족 전원 사망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평생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사건은 가스통이 터지는 순간부터 소녀가 구조된 순간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열흘 동안 그 무서운 불길이 계속되었다면 피해 정도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화재에 얽힌 기억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8년 전 어느 봄날 아침 단잠을 자고 있는데 멀리서 헬리콥터의 굉음이 들려온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침대에 누워있던 나를 깨운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무시하고 이불을 더 끌어올려 귀를 막지만, 헬리콥터 소리는 멀어졌다가는 다시 가까이 온다. 어찌나 가까이서 들리는지 바로 지붕 위에 헬리콥터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심지어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가 동시에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결국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올려 쳐다본 하늘에는 여러 대의 헬리콥터들이 물 양동이를 하나씩 달고는 호수와 산을 오가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관악산 아래 위치한 아파트였고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나처럼 아파트 밖으로 나와 구경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관악산에 불이 나서 진화 작업 중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호수에서 물을 길어다가 산으로 가서 불을 끄는 원시적인 방법이다. 다행히 산불은 반나절만에 꺼졌고 인명피해도 없었지만 담뱃재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불의 피해 흔적은 8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치킨집 화재 현장과 헬기산불 진화를 목격한 두 가지의 기억을 연결해 보면 담뱃재를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버리거나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는 아주 사소한 원인이 엄청난 화재로 이어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이며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공지능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는 4차 혁명시대에 살고 있지만 산불을 끄는 방식은 아직도 원시적이다.
이번 열흘 넘게 진행된 산불의 피해는 다음 세대까지도 복구되지 못할 수도 있다. 울창한 숲이 복구되는 건 일이 년이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휴일이면 친구들과 함께 가고 때로는 혼자서도 찾아가서 누렸던 숲의 힐링을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들도 함께 누리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숲을 지킬 수 있다는 해피 엔딩의 기대가 생기는 이유는 기부금 액수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관심과 다양한 환경단체에서는 피해자들과 만나 문제점을 들어보고 원인 분석도 하며 강력한 법적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노력이 결실이 맺어져 내년 봄에는 산불 뉴스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이 모든 노고에 적어도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산행에 나서려고 한다.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