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오늘따라 그녀는 유달리 말이 없다.
여전히 캡 모자를 눌러쓰고 연신 물통에 붓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녀는 5개월 전에 나와 함께 어반 스케치를 등록한 그림 동기생이다.
“역시 스케치가 큼직하고 시원하다”
슬쩍 그녀에게 말을 붙여본다.
“......”
그러나 묵묵부답이다.
보통 때 같으면 “어머! 언니도 올망졸망하고 아담해요” 하며 서로의 스케치가 더 좋다고 치켜세울 텐데 그녀답지 않게 침묵하고 있다.
그녀는 항상 명쾌했다.
선생님께도 거침없이 질문하고 동기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결석도 거의 하지 않고 항상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왔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 수강생들 사이에서 그녀와 나는 서로 의지하고 있는 사이다.
어반 스케치반 열다섯 명 남짓한 수강생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그녀의 무반응에 멀쓱해진 나 역시 A4 스케치북에 눈을 고정하고 연신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하며 그들의 집중에 동참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집중 에너지가 떨어질 무렵 누군가 선생님께 다가가서 케이크와 커피를 선물한다.
스승의 날 작은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모두가 잠시 멈추고 노래도 부르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데도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연신 그림에만 눈을 고정하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하며 가까스로 분위기만 맞추고 있을 뿐이다.
내가 커피며 케이크를 챙겨주자 마지못해 고개를 드는 그녀의 목덜미에는 검붉은 멍 자국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너무 놀라 “이게 뭐야! “라고 소리 지를뻔했다.
옷 사이에 숨겨 안 보이다가 목을 움직이는 순간 슬쩍 보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까스로 꿀꺽 참았다.
그리고 내가 멍자국을 본 것을 그녀가 알지 못하게 짐짓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저분 그림 좋지. 우리는 언제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 “
아무것도 못 본척하며 고개를 숙여 그림에 다시 집중한 척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집중은 되지 않고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어쩌다가 그랬어? “라고 태연하게 물어보면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공에 맞았어요 “ 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소한 문제를 괜히 오해를 해서 나 혼자 끙끙 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춘기 아들 두 명에 남편까지 무뚝뚝한 남자 셋과 함께 살고 있다.
종종 딸이 부럽고 자상한 남편이 부럽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만난 지 5개월 정도 된 사이고 일주일에 두 시간만 만나는 사이인데도 꽤 자주 힘들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오해가 아니라 멍자국은 가정 폭력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그녀는 유달리 오늘따라 지쳐 보이고 다운되어 있다.
이벤트가 끝나갈 무렵 그녀가 붓을 빌려달라고 말을 걸어왔다.
평상시보다도 더 상냥하게 붓을 건네준다.
나 역시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한다.
지우개와 붓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그림을 흘낏 보며 한 마디씩 격려한다.
”훌륭한데! “
”잘 그렸어요! “
평상시와 달라진 건 없다.
단지 그녀가 그림에 더 집중하고 말수가 줄어든것외에는!
스승의 날 이벤트가 끝나고 다시 집중 모드로 들어가니 창 밖의 바람에 창문고리가 달랑 대는 소리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청아하게 들린다. 그런데 내 마음은 청아하지 않다.
정말 가정폭력의 흔적일까?
아니다! 가정 폭력의 증거라면 남들 눈치채지 못하게 했을 것 같다.
혹시 한의원에서 부항을 뜬 자국인가?
아 맞다! 그럴 거야!
드디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부항자국치곤 너무 크고 모양이 둥글지 않았다.
안도의 마음도 잠시 또다시 마음이 심란해진다.
주변에서 주섬 주섬 미술도구를 챙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두 시간이 지나 끝날 시간이 된 것이다.
집중하지 못한 나의 그림은 오늘따라 더 형편없다.
그녀와 나는 강의실을 나오면서 예전과 똑같이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집에 오는 공원길은 조팝나무와 이팝나무가 녹색과 흰색의 조화를 이룬다. 청명한 날씨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공원 놀이터의 어지럽혀진 장난감처럼 복잡하다.
물론 수강생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예전과 똑같이 그녀를 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
그녀가 가정 폭력 희생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란한 귀갓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