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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Feb 01. 2024

첫사랑과 친정은 무슨 관계?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

1985년 연대 앞 독수리 다방에서 B를 앞에 두고 내가 뱉은 말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틀 전에 선배언니의 고백 성공담을 듣고 결심한 것 같다.

분명 나의 고백은 실패일 거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지만 수개월의 짝사랑을 끝내고 싶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B는 당황은 했지만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좋아하는 애가 있다는 답변으로 거절했다.  

달 정도 가슴이 쓰렸지만 짝사랑을 끝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찾아 학교 동아리실로 온 B의 방문은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외사랑은 7년을 이어갔다.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손 한번 잡지 않았다.  

나야 어떻게든 손 한번 잡고 싶었지만 B는 나의 재롱을 그냥 묵묵히 받아만 주었다.  

대부분의 연락을 내가 먼저 했고 아주 가끔 하는 B의 연락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애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이상한 관계는 B가 마침내 결혼 상대자를 만났을 때야 끝이 났다. 7년의 기간 동안 나를 좋아했던 남자애들을 쳐다도 안 보았고 당연히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B는 신기할 정도로 빨리 잊혀졌고 미련조차 남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좋아서 부산에서 상경했던 아이를 매몰차게 돌려보냈던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오래도록 못 잊었다고 한다. 언젠가 들은 법륜스님의 법문이 떠오른다. "타인에게 차인 업보는 없어도 오히려  타인 업보는  있다 "


 그런데 요즘 나는 십여 년을 드나들며 불교공부를 하던 도량을 정리하려고 한다.

신도회 생활에 열심이던 한 보살이 나에게 물었다.

"보살은 왜 그리 정*사를 못 떠나? "

그 질문이 무리가 아닌 것이 정*사는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를 훤히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도량이고 그런 작은 절에 나는 수시로 오다 안 오다를 반복했다.

살짝은 무례한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마치 B에게 고백하면 차일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이 답을 못 찾고 있었던 것처럼.  


 친정 결핍증!

40대부터 앓고 있는 나의 병명은 만성 친정 결핍증이다.

부모님과 큰오빠의 연이은 사망과 작은 오빠와의 불화로 사실상 친정이 없어진 지 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엄마와 돈독했던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는데 뜻밖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리고 허기진 사람이 먹을 것을 찾듯이 또 다른 친정을 찾고 있었다. 아마 친정을 찾는 마음으로 도량을 찾았고 매번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다. 첫사랑 B를 오래도록 포기하지 못했듯이...

B가 결혼 상대자를 찾으면서 정신을 차렸듯이 어느 날 나는 문득...

친정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정*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7년의 세월 동안 연애도 못하고 나를 좋아  사람을 몰라봤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도량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친정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사를 떠날 생각을 하면서 왜 첫사랑 B에 대한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같은 집착이어서 이지 않을까...?

이성의 애정을 갈구하거나 친정을 갈구하는 집착!


나는 집착이 아닌 발원을 한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친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고 남아있는 친정 식구들을 귀하게 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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