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달래줄 까페를 찾아서
커피 없는 삶이란... 점박이 없는 무당벌레 같달까?
빡빡하게 올린 우유 거품 아래 쓴맛과 단맛, 신맛이 4:3:3으로 어우러진 진한 커피를 만나면 영혼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채식을 지향하기로 마음먹은 이후에 두유 거품에 적응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a cup of capuccino'는 소확행 거리로 일 순위에 오른다.
몬트리올에서도 커피 사랑은 계속된다. 일주일 100불(약 9만 원)로 하루 두 끼와 교통비, 통신비까지 해결하려면 어떤 때는 3~4불 하는 커피 한 잔도 사치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러니 더더욱 신중하게 까페를 골라야 한다.
내가 까페를 고르는 기준은 이렇다.
1. 두 말하면 잔소리, 일단 커피가 맛있어야 한다.
2. 바리스타의 자부심이 느껴져야 한다. 자부심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3. 까페 분위기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인테리어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4. 곁들여 먹을 간단한 베이커리 종류나 수프를 갖추었다면 금상첨화
5. 손님에게 눈치를 주지 말아야 한다. 기본 2~3시간은 맘 편하게 작업해야 하므로.
유럽 분위기가 진하게 풍기는 몬트리올에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냄새가 비어져 나온다. 퀘베꾸아를 구사하는 주인장도 있지만 정통 불어로 손님을 맞이하는 바리스타들도 적잖이 많다. 흡사에 빠리에 온 느낌이랄까? 차이점이 있다면 빠리의 까페보다 훨씬 나이스 하다.
한 달 반 남짓 지내면서 다녀본 까페들 중에 Top 3을 꼽아보자면 이렇다.
1. Cafe Xavier
매일 다니는 어학원 1층에 자리하고 있다. 텀블러를 가져가면 소이라떼를 주문하면 기쁜 표정으로 아구까지 꽉 채워준다. 지난번에는 백발이 성성한 중년의 사장님이 직접 커피를 내린 후 'I like it' 그러면서 텀블러를 건네주었다. 얼마 전에 금발에 파란 눈의 젊은 청년이 새로 왔는데 귀여운 미소를 장착하고 주문받을 때마다 발사해서 엔돌핀 수치를 올려준다. 커피도 꽤 수준이 높지만, 아무래도 Cafe Xavier의 메인 메뉴는 수프다. 매일 바뀌는 수프는 주로 두 종류다. 채소 수프와 고기 수프.
당근, 토마토, 호박, 심지어 대파까지. 각종 수프를 동원해 진득하고 영양가 높은 수프를 만들어 낸다. 채소에 보리나 퀴노아 등 곡물을 넣어 한 대접 뜨근하게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2. Kouing-Amann
서점과 빈티지샵, 벽화가 어우러져 한껏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몽후아얄 거리에 위치해 있다. <Le Port de Tete(머리의 항구?)> 서점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보일 듯 말 듯, 문이 약간 안으로 들어가 있어 지나치기 쉽다. 한인식당에 김치찌개 먹으러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하고는, 창문 너머 크루아상과 키슈의 화려한 자태에 현혹되어 들어갔더랬다.
베이커리가 중심이라 테이블이 불과 세 개 밖에 없다. 4인용, 2인용, 2인용. 운 좋게도 창가 쪽 2인석에 앉았던 할머니가 일어서는 바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음 날 먹을 오리지널 크루아상 2개, 키슈 하나, 그리고 카페에서 책 보며 마실 라떼 작은 걸로 한잔. 메뉴판에 카푸치노가 없길래 라떼로 대신 주문. 이렇게 네 가지에 고작 9.3불(약 8,300원). 은혜로운 가격이었다.
제빵사용 흰 가운에 흰 모자를 쓴 초로의 할아버지가 어찌나 친절하던지. 한쪽 눈을 살짝 찡긋하며 귀엽게 주문을 받는 바람에 기분이가 1.2배 좋아졌다.
3. Larue & fils
Jarry역 근처, 유기농샵 <LOCO> 맞은편이 자리 잡고 있다. 까페 오른쪽 넓은 자리에도, 창가에도 긴 탁자를 놓아 혼자 와서 작업하거나 책 읽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헤드폰을 끼고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작업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어, '음, 작업용 카페군' 쉽게 짐작한다.
모던한 분위기에 주인장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서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터프한 비주얼에 적당히 친절하다. 'You deserve my coffee'라고 쓰인 티셔츠라도 입은 듯, 자신감이 뿜뿜 뿜어져 나온다. 역시나 카푸치노가 실망 없는 맛이다.
간단한 파이와 쿠키도 구비하고 있어 허기를 달래며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름 난 프랜차이즈 까페는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주인장이 오너십과 애정을 가지고 한잔 한잔 정성을 쏟는 까페를 일부러 찾아다닌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에 빡빡하게 거품을 올린 카푸치노를 마시면 별일 없이 행복감이 올라가니까.
* 몬트리올은 코로나가 이제 시작이다. 이번 주부터 모든 학교가 3월 말까지 2주간 휴교에 들어갔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도 예외 없이 그 기간 동안 쉰다. 에효 ㅜ 까페 탐방도 잠시 접어야 한다. 4월에 더 심도 있게 진행하는 걸로.
까페 자비에의 베이커리 컬렉션. 아침마다 키친에서 바로 구워 대령한다.
영혼을 적셔줄 의문의 대파 수프. 초록색 괴물체 같지만 꿀맛이다. 그릴드치즈 샌드위치랑 먹으면 머리 속까지 든든해지는 느낌.
몽후아얄 거리의 베이커리-까페 Kouing-Amann. 몇 가지 안 되는 빵이지만 모두 다 군침 돌게 맛나 보인다.
잡기 힘든 창가 자리. 벽돌벽과 파란색 낡은 의자가 찰떡 같이 어울린다.
크루와상 몇 종류, 키슈 몇 가지가 끝. 자신 있는 빵만 구워낸다는 소리렸다.
Jarry역 근처의 쿨한 카페 Larue &fils(직역하면 '그 거리와 아들'). 주인장의 성이 '그 거리'인가 보다.
아키 시마자키의 책 다섯 권째, <Tsubame(일본어로 '제비'라는 뜻)>. 문장이 짧고 단단하다. 이야기는 묘하게도 대하소설+아침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