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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시나비 Mar 01. 2020

몬트리올의 겨울, 낭만적 ep.8

다.정.도 병인 양 하여

몬트리올에서 처음 사귄 친구들


몬트리올에 온 지 한 달이 후딱 지났다. 어제(2월 28일)은 Niveau5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서로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몇몇 이서 먹을거리를 준비해 왔다. 위고 선생님은 바삭하고 고소한 크루와상을, 브라질에서 온 마를루스는 짭조름한 치즈빵을, 나는 유부초밥과 베녜(Beignet, 프랑스식 도넛)를 가져왔다.


조금 오바인가 싶었지만 마지막 날에 나눠 먹을 뭔가를 손수 만들어 가고 싶었기에, 금요일 아침 6시 반부터 서둘러 밥을 지었다. 스시 라이스로 찰지게 지은 밥에 유부초밥 소스와 후레이크를 뿌리고 조물조물 섞어 정성껏 유부 껍데기에 넣어 도시락용기에 보기 좋게 담았다.


'혹시 시큼 달달하다고 싫어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아무 쓸데가 없었다. 지나가던 다른 반 선생님부터 우리 반 위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 모두 맛있다며 앞다투어 하나 더 먹으려고 덤볐다. 특히  페루에서 온 클라우디오는 혼자 다 먹을 수도 있겠다며 욕심을 부려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위고 선생님은 역시나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그런지 음식의 이름을 몇 번씩 물었다. '유푸 초-밥?', '유-브 초밥?' 어설픈 발음으로 외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처음 우리 반은 여섯 명으로 시작했다. 2주가 지나 브라질에서 온 안토니오가 먼저 본국으로 돌아간다며 미리 수료증을 받아가던 날 많이 아쉬웠다. 안토니오는 반에서 제일 빨리 친해진 친구였기 때문이었나 보다. 공부 욕심을 부추겨 준 모범생이기도 했다. 아무리 학원에 빨리 가도 항상 안토니오가 먼저 와 전날 공부한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언제나 진지하고 젠틀했다.  나이대도 가장 비슷해 제일 편하게 느껴졌는데 2주 만에 가버리다니 서운했다. 그냥 보내기 아쉬워 채식 식당 <Lola Rosa>에서 검은콩이 잔뜩 들어간 나쵸와 야채 라자냐를 나눠 먹으며 브라질과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이야기를 한참 나눴더랬다.


그 후로 또 2주가 흘러 이제 Niveau5를 마치고 각자의 '운명'을 맞이하는 날이 돌아왔다. Niveau6로 올라갈 것이냐, 유급당할 것이냐. 긴장감이 은근히 감도는 날이지만 풍성한 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다들 마음이 노글노글해졌다. 위고 선생님도 유난히 더 말이 많고 성대모사를 남발하며 연신 우리를 웃겼다.  


결국 디에고와 발렌티나는 유급을 당하고 나와 마를루스만 Niveau6로 올라가게 되었다. 우리 반에서 제일로 공부 잘 하던 클라우디오는 두 달의 짧은 연수를 마치고 페루로 돌아간다고 했다. 메일 주소를 남기자 '페루로 놀러오면 관광 안내를 해 주겠다'는 제안을 금새 해 왔다. '페루는 무척 아름다워. 아마 너도 많이 좋아할 거야.'라고 덧붙이면서. 페루에 가면 만날 현지인 친구가 생기다니!    


정이 많으면 이득인가 손해인가?


난 좀 정이 많은 편이다.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라나. 시골 엄마가 김치와 반찬을 잔뜩 보내주시면 이걸 누구랑 나눠 먹을까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핑계 김에 반찬을 한아름 들고 밤마실을 나서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평소에도 기회만 생기면 선물 주기를 즐기는 편이다. 상대방의 취향을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생일날 포장지로 곱게 싸서 손편지랑 내밀었을 때,  '어머, 내가 좋아하는 색상을 어떻게 알았어?' '선물을 진짜 잘 고른다'는 반응이 오면 살짝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중학교 2학년쯤이었나 보다. 어떤 농협마트 직원이었는지 얼굴은 전혀 기억에 없지만 소박한 무늬의 종이로 칼각을 잡으며 포장을 하던 언니의 손놀림은 선명하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선물 포장에 재미를 붙인 게. 백화점 포장 코너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 해 지기 일쑤다. 형형색색의 포장지와 고운 리본들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니까. 나는 고급지고 화려한 것보다 일러스트가 특이한 디자인의 종이를 더 좋아한다.


마지막 수업 전날, 눈여겨보아 둔 파피트리(Papeterie, 종이류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위고 선생님과 쥔장 언니에게 줄 선물을 포장할 종이가 있을까 해서.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고풍스럽거나 현대적이거나 에스닉하거나. 그중에서도 거칠한 느낌의 에스닉한 종이를 골랐다. 가격은 3.5불(약 3,200원)이었다. 종이 한 장 값으로 결코 가볍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금요일 아침, 여느 날처럼 30분 일찍 가서 다른 학생들이 오기 전에 위고 선생님에게 어여쁘게 포장한 에코팜므의 'Color of Africa' 데일리백과 <저도 난민은 처음입니다만>의 엽서 세트, 그리고 꼭꼭 눌러 적은 손편지를 건넸다. 위고 선생님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감격해하며 좋아했다.  '진짜 이쁘네요. 정말 고마워요 C'est vraiment joli. Merci beaucoup.'를 연발하는 바람에 살짝 민망해졌지만 기분이 두둥실 떠올랐다. 역시 선물은 주는 사람이 더 기분이 좋은가 보다 싶었다.


Niveau6에는 마를루스와 나만 올라간다. 다행히 아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3월에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 새로운 반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거기도 분명히 호의적인 쥔장과 유쾌한 선생님, 다정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2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위고 선생님과 마를루스, 그리고 나. 한 달 동안 정이 담뿍 들었다.  

종이전문점(Papeterie)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포장지. 한 장에 무려 3,200원이지만 과감하게 지르다.  

(쥔장 언니 선물: 안에 뭐가 들었을까? )

Niveau5에서 '이 달의 우수학생'으로 뽑히는 영광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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