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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y 22. 2019

꿈이 있었다.

어른이 되는 꿈

26살에 처음으로 계약직 일을 시작하면서 직장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조용한 사무실 막힌 파티션 안에서 불편함과 어색함, 그리고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의 불안함을 숨겼다. 혼자 있는 게 아닌데도 조용한 사무실이 너무나 불편했다. 적응 중이라고 생각하며 어색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억눌렀다. 계약직은 나름 자유로웠다. 그때는 취업에 대한 불안함 보다 여기서 기초를 닦으면 새로운 진짜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 무사히 일을 마쳤다. 그 와중에 나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내가 가진 [젊음]으로 인해 기죽지 않고 관심 있는 것들에 적극적으로 배움을 실천했다.


그때는 쓰일만한 자격증일까 고민했던 (그러나 아직까지 쓰일 일이 없는) 컬러리스트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성취감이 있었다. 그림은 그리지 못하고 감각도 부족하지만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었다. 비전공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무엇이라도 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낮은 문턱을 넘어온 기분이었다.


꿈이 있었다.

직업적인 꿈이 아니라 살고 싶은 모습을 그렸다.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편견과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가치 있는 것과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막연히 커리어우먼도 동경했다. 무엇보다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틀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출하고 싶었다.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힘은 어른이 되면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어른의 기준은 나이로 [서른]이었다.


27살에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취업을 향해 남들이 다 가진 것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른이 되면 내 차가 생길 날이 올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관심분야에 취업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작가로 불렸다. 지방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고, 재미도 있었다. 나름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안에서 나는 감정노동자일 뿐이었다. 미디어를 배웠지만, 미디어를 혐오하게 될 뻔했다. 보이는 게 역시 다가 아니라는 걸 체험했다. 그래도 글 쓸 기회가 왔을 때는 진심을 다했다. 감정노동만 끝내면 가치를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불편한 직장생활을 적응하려 애쓰며.

ⓒ사라

또 관심분야에 도전했다. 진짜 20대 후반에는 꿈이고 뭐고 내 몸 하나 버티게 하는 게 일이었다. 밥 먹듯 하는 야근, 불편한 상사, 불편한 조직문화에 불편하지만 몸을 욱여넣어 버티는 게 내 일이 되었다. 어른이 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불안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점점 이러한 사회에 적응하라고 나를 채찍질했다. 가치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새 네모난 공간으로 들어와 네모가 되어야 했다. 나의 모양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냥 그동안 순진한 꿈을 꿨던 거라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평범해졌다. 누구나 버티는 것처럼, 누구나 사는 것처럼, 누구나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채.


난 서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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