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 May 22. 2019

서른이 되었다.

어른은 못 되었지만

[분노로 끝난 20대]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 되면 지긋지긋하게 불편한 직장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당황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방황도 멈추게 되는 시점일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망한 거다. 내 청춘이 그냥 끝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2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는 회사에(특히 중소기업에)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꿈을 펼치고 싶었는데 꿈을 먹어버린 현실에 분노하는 것으로 나의 소중한 20대를 억울하게 끝냈다.


첫 직장을 시작으로 다섯 번의 이직을 했다. 타지 생활로 인해 숨만 쉬어도 나가는 생명유지비용 때문에 백수기간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적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합격의 순간도 반복될수록 아리송하게 느껴졌지만 퇴사를 할 때면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은 확실히 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선택한 결과에도 퇴사-입사의 반복이 될 것을. 회사에서 회사를 옮기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서른이 되고 깨닫게 되었다.


[나를 발견하는 나이]                                                                                                                                

서른이 시작되고 신기하게 내 인생(아니 나에게)에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재취업을 통해 얻고자 한 건 궁극적으로 성취감이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퇴사와 함께 소멸된 성취감을 재취업을 통하여 채우고자 했었다보다. 오래 일할 수 없었던 분명한 이유는 많았지만, 직장 안에서 썩어가는 나 자신을 성취감으로 다시 살려야만 했었나 보다. 심지어 잠깐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도 성취감을 얻고자 했던 도전이었음이 보였다. 그래도 그때의 나에겐 살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 틀에 계속 속해있는 방법 밖엔 없었다.


회사는 싫어서 이번에는 의료기관 기획홍보 담당자로 또다시 재취업에 얼떨결에 성공하며 새로운 터전에서 서른의 삶이 시작되었다. 혼자 하는 일이지만 혼자 하지 않으면서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다. 의도치 않게 나의 동료가 내가 되었고, 뜻밖의 상황에서 나는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었다.


[나로 살아가는 나이]

서른이 된 요즘은 어른이 아니라 '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기분에 내가 하고 싶은 건 해보고 싶은 마음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20대 때는 취업과 경력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건 뒷전으로 두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는 먹고살 수 없으니, 이거 말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능력만을, 그리고 최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돈을 벌고 경력이 늘면 여유 있어질 테니 그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그냥 실천하기로 했다. 이 실행력은 서른이라 생긴 걸까.


내가 꿈꾸던 멋진 어른의 모습은 아니지만, 서른이 되니 이전과 다른 모습이 내 안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느낀다. 아기가 육체적으로 몇십 년 동안 자라는 것처럼, 사람이 30년 즈음되었을 때에도 자라게 되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육체와 생각할 줄 아는 뇌가 형성되었으니 이제는 나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어른이 되는 건 멀었고, 다 자란 몸과 영혼을 튼튼하게 그리고 성숙하게 만들어 자존으로 사는 시기가 바로 지금. 서른부터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