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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un 03. 2019

공감에 대하여

그리고 한약의 효과에 대하여

지난 4월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체력이 약한 나는 몸살이 올 것 같았다. 평소에는 먼저 연락도 안 하다가 정말 힘들 때는 엄마한테 전화해 투정을 부린다. 엄마는 나에게 연락이 안 오는 게 맘 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날도 엄마한테 '이번 주에 이런저런 출장도 갔고, 가서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갔다 오니까 또 쉬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라고 투정을 부리며 이러다 곧 몸살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자라면서 잔병치례 하나 안 했지만, 체력이 약해 비실거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번 주에 집에 오라고 하시면서 동네에 잘하는 한의원이 있으니 거길 가자고 했다.


엄마는 이어서 그 한의원의 원장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젊은 나이인데 똑똑한 데다 얼마나 진료를 잘하는지 모른다면서 그 원장이 지어준 약 먹고 그동안 낫지 않던 증상이 나았다며. 엄마 말을 듣고 나도 당장 그 한의원으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직장에서 갑자기 연차를 쓰고, 이래저래 꼬이는 상황이 생겼음에도 당장 엄마에게, 그리고 그 원장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당일, 엄마와 만나 한의원으로 가면서도 엄마는 그 원장이 얼마나 똑똑하고 약을 잘 짓는지 칭찬이 일색이었다. 나는 '오.. 정말?'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정말 잘하긴 하나 보다며 기대가 되었다. 


우리 동네는 정말 작은 산골 시골이다. 기차역이 있는데, 우리 역에 서지 않으면 5초 만에 지나칠 그런 작은 동네. 이런 곳에 그렇게 대단한 의사가 있다니 기대가 될 만했다. 심지어 그 한의원 문 앞에는 원장의 이력이 적혀 있는데, 서울대 출신이었다. 나도 참, 서울대 타이틀로 인해 갑자기 이곳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나 뵌 원장님은 정말 젊어 보였다.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은 되어 보인 원장님은 우리 엄마에게 '어머님 오셨어요~'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시설이 깔끔하거나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고 원장이 진료하는 방은 옆에 있는 화장실을 누군가가 쓰면 전기가 안 들어오는 이상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이런 시설이 거슬리다기 보단 웃겼다. 


원장님은 엄마와 잠시 안부를 물어가더니, 나에게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냐고 물었다. 나는 불편한 건 없는데.. 그냥 최근에 좀 스트레스를 받아서 체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대답하며 딱히 뭐라고 설명할 큰 증상이 없어서 민망했다. 원장님은 이어서 나에게 생활패턴과 함께 어떤 일을 하는지, 최근에 어떤 게 가장 힘든지 등을 묻고 나서 소견을 말씀하셨다.


정말 힘드시겠네요,
 저도 그렇게 일 해봐서 압니다.
ⓒ사라툰 : 한의원 썰


원장님은 주 6일 근무에 토요일 퇴근이 4 시인 나의 근무환경을 이야기하면서, 본인도 그렇게 7년 동안 일해봐서 얼마나 힘든지 안다고 했다. 나는 주 6일이 힘들다. 주말에 교회도 가야 하는데, 공휴일이나 연차가 없으면 한 달 내내 나가서 일하는 거다. 원장님도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니 몸이 고장 나더라고 했다. 나는 내 체력이 약해서 주 6일이 힘든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원장님은 계속해서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남자 원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우리나라 구조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얘기를 했다.  그리고 진맥을 하더니 성격이 착하고 좋으신 분 같다며 많이 참으실 것 같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특히나 이번 직장에서 참을忍을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렇게 잘한다고 했던 원장님의 실력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 생활에 어떤 스트레스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먼저 마음으로 이해하는 한의사. 공감능력을 가진 한의사라니. 신기하게 나도 의사에게 공감을 받으니 1차적으로 마음이 치료가 되는 느낌이었다. 


한의사는 오늘 방문한 엄마와 나에게 모든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젊은 나에게 한약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지어주신 한약 꾸준히 먹어서 정말 더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생활패턴을 파악한 후 내 체질에 맞는 약을 짓기 위한 질문과 답이 끝났다. 더 궁금한 게 없는지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시길래 궁금한 걸 짜내며 나는 최대한 많은 질문을 하려고 노력했다. 혹시 약을 먹으면 살이 찌냐는 나의 질문에 원장님은 여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살찌는 걸 항상 고민하시네요 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들마저 혹시 살이 찌냐고 물으신다면서. (그리고 살찌면 본인의 멱살을 잡으라고 했다.)






맞아요, 그때 어머님도 많이 힘드셨어


엄마를 낫게 해 준 한마디. 

우리 엄마는 한 동안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들로 신경을 많이 쓰셨다. 엄마의 증상은 소화가 안된다거나 어떤 약을 먹어도 낫질 않고, 병원을 가도 이상이 없다는 증상이었다. 원장님은 엄마의 묵은 체증을 한방에 치료해 주셨다. 그 비결은 공감의 보약과 엄마의 체질에 맞는 한약이었을 것이다. 


이 한의원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았다. 원래 어르신들이 많은 시골이긴 하지만 여전히 공감이 필요한 여성(할머니, 어머님)들을 마음으로 치료해 주고 계실 원장님이 계속 우리 동네에 계셨으면 좋겠다. 진료를 받았지만 '정말 힘드셨겠어요' 한 마디가 가장 머리와 마음에 남았다. 내가 최연소자 같아 보였던 이 한의원에는 특별히 큰 병이 있어서라기 보다 오늘도 공감 치료가 더 필요한 분들이 모여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회관과 보건소 이상의 역할을 해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곳에서 환자들은 오늘도 효과를 볼 거라 생각한다. 

약 효과는 긍정적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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