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소심이
지난번 한의원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엔 성격에 대한 글이다. 사람들이 나보고 착하다고 한다. 나도 내가 착하구나 생각하며 살았는데, 알고 보니 착한 게 아니라 위험으로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어기제란 말을 여기다 쓰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공감 치유를 하시던 원장님이 진맥을 하더니 맥이 규칙적이지 않고 떠있다(?)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내가 혹시 화병이냐고 물었는데 화병까진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었지만 그럼 화병에 걸린 사람은 도대체 일상생활이 가능한 걸까 걱정이 되었다. 혹시 일할 때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의외로 내 혈액형은 O형이다.
나는 두려움 많은 소심쟁이라서 항상 겁에 질린 채로 일을 한다. 세상에 나를 엄청나게 드러내고 싶은 성격도 아니라서 치장도 잘 안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를 드러내야 하고 보이는 일을 해야 한다. 심지어 팀원으로써의 역량밖에 안되는데 혼자서 리더급의 업무를 하라고 하니, 스스로 적응하느라 맘고생을 좀 했다. 사람들 기에 눌려 눈치도 많이 보는데 내 성격에 반대되는 '나서는 일'이라 그런지 좀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속으로는 이미 지구를 다 부셨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조율할 일도 많아 이런저런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며 마음속 우주에서는 이미 이 지구를 몇 번이나 다 부셔버렸다. 사실 들리는 모든 말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데, 누구나 그렇듯 잘 안된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미움받고 있는 저 사람에게도 나는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데라며 어이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
고분고분 착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 오늘도 한결같은 상사라는 사람 때문에 또 화가 나서 평소와 달리 예의를 갖추지 않은 채 (무시한 채) 홱 돌아섰다.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것에 소심하게 반항하듯 순간 착하기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도리어 나에게 왜 말하는데 그냥 가버리냐며, 그래도 내가 상사인데 앞으로 행동 조심하라고 하신다. 그 상사는 평소에 자기 아랫사람들에게 꼰대질과 막말, 그리고 일 적이든 사적이든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그러면서 본인은 '윗사람한테는 무조건 숙여라, 그게 사회생활이 힘든 이유다' 라며 훈계한다(정작 본인은 부장님과 자주 싸운다.). 거기에 또 맞춰가며 착한 겉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
죄송합니다
정작 죄송해야 할 사람은 어린 내가 아니라 당신인데, 나는 내가 상사의 헛소리를 무시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상사 직급이 자기 맘대로 하는 권리라도 되는건가? 아닌 것에는 당당하게 대응하고 싶었는데,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대리님이 자꾸...' 라는 말을 누르며 어렵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참는 방법을 배워가면서도 이딴 게 사회생활인가 하며 회의감이 들었다. 나이가 들 수록 더 관대해지고 태평양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오늘도 이렇게 또 하나 실패를 경험한다.
아닌 것엔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성격이 되고 싶은데 콩알만 한 간을 가진 소심이는 오늘도 혼자 이렇게 지구를 부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