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의 대상은 보호자까지
암이 온몸에 전이되어 가정에서 말기 암 치료를 받던 분이 응급실을 통해 급하게 내원하셨다. 주호소 호흡곤란이었다.
산소마스크(저유량산소요법)로 산소를 100프로 주어도 호흡곤란은 해소되지 않아 Optiflow(고유량산소요법)을 적용하였으나 자발호흡이 힘든 상태였다.
결국 O2 demand가 높아져 Intubation이 결정되었다. 숨을 전적으로 Ventilator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중환자실, 내 환자로 입원하셨다.
그러나 심장도 스스로 제기능을 하기 힘들어 보였다. SBP 70~ 80, MBP 30~ 40대를 유지하여 Norpin(승압제)은 최대허용 용량을 한참 초과해서 사용하고, 혈압조절이 되지 않을 때 최후의 보루로 사용하는 Vasopressin fluid 마저 최대용량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내 환자는 생명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환자의 배우자와 딸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짧은 순간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환자의 상태가 이러이러하니
이러한 치료를 하겠다.
이 말은 의사 몫이다. 우린 이 말을 할 권리가 없다.
간호사로서 중요하지만 가장 간과하기 쉬운 역할이 있다.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까지 간호하는 것.
얼마나 놀랐겠는가. 내 남편, 아버지는 암과의 힘겨운 투병생활 중이었지만 오늘 아침까지 집에서 밥도 잘 드시면서 치료받고 계셨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눈도 뜨지 않고 숨도 스스로 쉬지 않으며 심장도 서서히 박동수를 줄여가고 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보호자에겐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상황에서 간호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우선의 말은
많이 놀라셨겠어요.
마음을 알아주고 매만져주는 것.
그럼 일단 보호자와의 라포(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치료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조사하고 중환자실 입원 안내를 도운다.
과거력, 평소 복용하던 약, 대소변 양상 등등 이에 중환자실에서 사용하는 위생용품을 비급여로 이용하겠다는 동의서에서 서명까지 받고 나면 입원절차는 얼추 마무리하게 된다.
바쁜 새벽, 나이트 때 환자를 받았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 면회를 오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눈물도 흘리지 않는 채 침착하게 환자를 바라보는 보호자들을 보며 눈물이 날 뻔했다.
얼마나 많은 감정을 숨기고 있을까
느꼈다. 멋대로 느껴버렸다.
그래서 그냥 보내야 하는데 구태여 말을 여러 가지 얹었다.
지금 000님은 굉장히 편안한 상태에서 치료받고 계세요. 목에 관을 넣어 숨을 쉬고 있어서 깨어계시면 굉장히 불편하실 거예요.
그래서 진정약물을 사용해서 이완된 상태로 치료에만 전념하고 계신 거예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국 이날 인계 직전까지 정말 정신없이 남은 일을 쳐내었고, 다음 듀티 선생님의 좋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남아서까지 일을 마무리했다.
3일 뒤 다시 이 환자를 보게 되었다. 여전히 약물과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지만 모든 Vital Sign이 정상범위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이날 배우자와 딸이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나를 보자마자 한층 격앙된 톤으로 준비해 두었던 말을 건네셨다.
간호사님! 제가 정말 뵙고 싶었어요.
이름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어느 간호사의 낭만과 위로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