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새해 전야, Firework 후 폭우가 쏟아졌다

한국여자 세 명이 돗자리를 머리에 쓰고 브리즈번 시내를 활보한 썰

by 그린 green

소소한 호주에서의 일상, 아름다운 상황과는 조금 뒤틀린, 그래도 그 안에서 낭만과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여러 에피소드를 소소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2025.12.31

호주에서 세컨드비자를 따느라 열심히 일한 까닭에 지칠 대로 지치고, 낡을 대로 낡아버린 어느 세 워홀러들이 있다.


휴일은 집에서 무조건 힐링해야 하는, 집 밖으로 나가기까지 꽤 오랜 결심이 필요하나, 오늘이 특별한 이유는 새해 전날이기 때문, 그리하여 이 세 워홀러는 밖으로 나가자고 다짐한다.


우리가 호주에서 보내는 첫 연말이라 연말의 가장 큰 행사인 firework을 구경하자는 의견이 한데 모아졌다.


자 이제 어디서 봐야 할지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 어딜 가나 털썩 앉아서 보면 되는 일이지만


이 추억에 구색을 갖추고 싶었던 우리는(특히 나는) AI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가까운 명당을 찾아보기로 한다.


AI가 정해준 대로 뉴팜 쪽에 자리 잡기로 하고


아름다운 외출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세 워홀러는 제대로 피크닉 준비를 시작하게 되는데~


우리는 피크닉 매트, 잘 손질한 망고, 과자, 캠핑의자, 마실 것들을 챙겨서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10분을 걸으면 기대했던 스폿이 나타날 것이다.


걸어가는 길에 ‘올해 가장 ~~~ 한 것은?’ 형태의 질문들을 건네며 호주에서의 한 해를 추억하는데, 셋 다 어느 한 질문에서 말문이 막혔더랬다.


“올해 가장 맛있었던 식당은?”


그도 그럴 것이 정착 초기에 다녔던 여러 식당은, 요리를 좋아하고 심지어 잘하는 우리에겐 가격 대비 만족스러울 수 없었고, 최근 3개월은 외식을 한 횟수가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손에 꼽을 정도로 집에서 모든 요리를 직접 해 먹었다.


그래서 누구 한 명도 진심으로 맛있었던 식당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불꽃놀이 관람 장소에 도착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을 대충 둘러보고 비어있는 잔디에 재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앞에 세명의 구경꾼들로 인해 시야가 가려졌지만 걸어오는 길에 생각보다 지쳤던 나는 앉아서 구경하기로 한다.


한껏 반짝이는 빛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던 중 하늘에서 비가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호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에겐 개의치 않는 빗방울이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길지는 않은 시간 동안 하염없이 쏘아 올려지는, 사방으로 퍼지는, 끝내 사라져 버리는 여러 빛들을 들여다보면서 별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나, 꽤나 집중했던 것 같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나서 세차게 내리고 있던 비를 그제야 알아차렸던걸 보니


우리는 그럼에도 크게 서두를 건 없다는 듯 각자의 아래에 깔려있던 것들을 머리 위로 쓰고 서두를 게 전혀 없다는 듯 다시 집으로 향했다.


처음엔 비를 직접 맞다가도 탈모걱정에 캠핑의자 덮개를 머리에 쓰고 벗고를 반복하다가

긴박했지만 생동감이 가득해서 뭇내 설렜던 그 순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지자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새 피크닉매트 아래에 일렬로 열을 맞춰 걷고 있었다. 앞사람이 주로 비를 맞기 때문에 중간중간 사이좋게 앞장섰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땐,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우린 모두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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