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아들 둘을 키우는
전업 엄마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내가
참 신선했다고들 했다.
"사실 전 엄마로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하는 내가
참으로 생경해 보였다고들 했다.
그래.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얼마 전까지는 이미 지나버린
나의 과거 경력을 들먹이는 여자였다.
그저 엄마라고 소개하지를 못했다.
예전엔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했었다든지,
글로벌 마케팅팀에 있었다든지 하는 얘기를
사족처럼 붙이곤 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처럼 말하는 누군가를 만났다면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로부터
대단하다거나
참으로 낯선 느낌이라는 피드백을 받다 보니,
그 날이 떠올랐다.
내가 엄마가 되었던 그 날.
뉴욕 출장을 앞둔 겨울이었다.
글로벌 프로젝트 점검을 위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고
차장님이 가야 할지 내가 가야 할지
출장자 선정이 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장시간 비행에, 가서도 무리해야 할 일정을 정하기 전
확인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약국에 들러 테스트기를 샀고
매직아이 같이 희미한 두 줄을 보았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했다.
점심시간 산부인과에 들러 피검사를 하고
전화로 통보받은 임신 확인.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계획에 없는 임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계획한 시기가 아니었다.
시기가 살짝 비틀어져
나의 모든 계획을 무력화하고 있었다.
그 출장은 담당 실무자인 나 대신
담당 간부인 차장님이 가기로 했다.
언제나 배려가 가득했던 차장님께
죄송하고 감사했다.
이내 입덧이 시작되었고
입덧이 조금 누그러질 때쯤
또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진행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인사팀에서는 나를 지목했다.
회사 내에 관련 업무 진행 경험이 있는 실무자가
나뿐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곧 출산휴가에 들어가야 할 나에게
새로운 부서로의 발령은 너무 큰 모험이었다.
게다가 내년 과장 진급 케이스.
출산휴가 전 그 해 고과를 위한 성과를 쌓아야 했다.
기존의 부서가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실, 임신 시기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이
이 부분이었다.
어떻게든 고과 시즌까지 근무를 하고
그 이후에 출산휴가든 출산이든 해야 했는데,
나의 출산예정일이 그 고과 시즌보다 앞서있었다.
내 계획보다 몇 개월 일찍 들어선 아이.
지나고 보니
늦은 것보다 이른 것이 나았다 싶지만
당시에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인사팀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부서로의 발령을 종용했고
결국은 이걸 고과 협상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여부에 상관없이
과장 진급에 지장이 없는 고과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참 독하게도
나는 나의 일과 나의 자리가 중요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입덧과 무거워지는 몸을 안고
새로운 부서로 출근을 했다.
그곳에서의 몇 개월이 지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던 성화에
결국 채웠던 그 자리를 비우는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업무차 나를 찾는 전화들은 점차 줄어들었고
나는 출산을 했다.
그리고 정신없는 육아가 시작되었다.
친정엄마는 멀리 살고,
시어머니는 아직 일을 하시는 상황,
일만 하던 초보 엄마에게
육아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저 하루하루 아이와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니
복직의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복직을 준비해야지 생각이 들 때쯤,
난 새로운 충격에 빠졌다.
하아, 이 아이를 두고
어찌 회사로 돌아간단 말인가.
나는 복직을 망설이고 있는 나를 만났다.
어쩌면 일에 있어 나를 늘 붙잡았던
그 완벽주의가 또다시 새로운 일, 육아 앞에서
나를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출산 전엔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이 알고 만 모성이라는 것.
꼬물거리는 이 조그만 생명체에 대한 애정.
양가 그 어느 곳도 기댈 수 없어
온전히 남에게 맡겨야만 하는 상황.
복직하면
당연히 퇴근시간이 보장되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
출산 전엔 통제 불가능한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싫었었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정말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런 결정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이 조그만 아이를 위해.
그리고,
결국 회사에 퇴사원을 내고 말았다.
이럴 거면 나는 왜 꽃 같은 20대를
그렇게 워커홀릭으로 살았나 싶었지만
결국 결정을 내린 것은 나였다.
모두가 말리는 가운데 초연히,
나는 나의 아이를 직접 키우겠노라며.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