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겠어. 나 이렇게까지 힘든데 회사 못 가겠어. 그만둘까 봐."
입덧이 한창이던 임신 3개월 즈음이었던가. 도저히 대중교통은 탈 수 없어 남편 차에 누워 퇴근하면서 툭 던진 말이었다. 100% 빈말이자, 너무나 힘들어 내놓은 투정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지럼증과 울렁거림에 일단 퇴근은 했는데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사내 수면실로 들어가 누웠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누워있기로 했다. 9시가 넘어 남편의 퇴근 연락이 왔고 나는 일어나 나와 조수석 시트를 완전히 뒤로 젖혀 누웠다.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일까. 남편은 저 말이 진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껏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던 남편이 아무 말이 없었다. 앞을 보고 운전만 했다. 그저 그렇게 힘드냐는 한마디 듣고 싶었을 뿐인데 서운했다.
그랬다. 나는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도 퇴사는 염두에도 두지 않을 거라 확신하게 했던 그런 여자였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 구석자리 하나 차지하지 않았던 퇴사라는 옵션. 그런 나에게서 그만둘까 하는 말이 나왔으니 그는 당황한 것이다. "아냐. 진짜 그만두겠다는 게 아니고 힘들어서 해본 말이야. 근데 진짜일까 봐 걱정됐어?" 했더니 멋쩍게 하는 대답 "응."
우린 그런 부부였다. 아이를 가졌으나 그 아이에게 전업 엄마를 제공할 생각은 전혀 없는 부모. 그로부터 2년 후, 우린 전혀 다른 부모가 되어 있었지만.
2015년 11월. 나의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날 고민만 하고 있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나의 복직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만둘까 하는 말 따위 농담으로 넘겼고. 진지한 퇴사 의사를 들은 양가 부모님은 간접적으로 반대를 표시하셨다. 특히 친정 부모님은 머나먼 부산으로 애를 보내면 키워주시겠다는 제안도 하셨다. 시어머님은 아직 교사로 재직 중이셨고, 친정은 너무나 멀었다. 못해도 하루 한 번은 아이 얼굴을 봐야 할 텐데 부산은 그럴 수 없는 곳이었다. 시터를 구한다고 해도 퇴근 시간을 보장할 수 없는데 아이와 하루 한번 신나게 놀아줄 시간이 없는 엄마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전쯤,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는 간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회의 소집을 했다. 오후 5시의 회의. 회의 참석자였던 타 부서 대리님에게 연락이 왔다. 모성보호 대상자이기 때문에 5시 회의 참석이 불가하다는 연락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렁이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현실적인 답변이었을 뿐인데.
그런 무지렁이 시절을 지나 엄마가 된 시점에, 나는 알고 있었다. 복직 이후 내가 이전처럼 마음껏 야근에 주말근무를 할 수 없음을. 내 욕심만큼 내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일을 할 수 없음을. 그 부분에서 나는 좌절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다. 그럴 수 없다면 하지 않아야 했다. 참으로 꼬장꼬장한 나의 자존심은 그랬다.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남편이 말했다. 회사에 엄마들 많이 있다고. 복직해서 퇴근도 빠르고 일도 많지 않은 곳을 찾아보면 어떠냐고. 복직한 워킹맘들은 빨리 퇴근하기도 한다고. 그 말에 화가 났다. 그녀들은 자신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몰려있음을, 그녀들의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을 것임을 남자들은 모르고 있을 테지. 그래서 되물었다. "그럼 오빠는 그런 엄마들이 업무적으로 멋있어 보여?"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내 결심을 굳혔다. 남편 역시 내 질문에서 읽어낸 듯했다. 복직을 하면 나는 결코 그런 엄마가 될 수 없음을. 그때부터 나의 퇴사를 응원하는 한 명이 되었다.
복직을 불과 2주 앞두고, 회사에 연락을 했다. 부서에서도 인사팀에서도 난색을 표했다. 인사팀은 당장은 이번 달 퇴사자 확정이 끝났고 시스템 상 지금은 다음 달 퇴사 밖에 처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부서에서는 이미 나를 포함한 업무 분장이 끝난 상태였다. 인사팀에는 어렵다면 며칠이라도 출근했다가 퇴사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부서에는 미안하다 사과했다. 사실 부서장님도 그렇지만 내 밑에서 일할 것을 기다렸다는 후배 사원에게 더 미안했다. 결국 며칠 출근해야 하는 일 없이 퇴사가 승인되었다.
이제 나는 진짜 전업 엄마가 되었다. 육아휴직 중인 마케터라는 말은 더 이상 해당사항이 없었다. 어느 날 오후 첫째 축복이를 데리고 단지 산책에 나섰다. 해가 따뜻했고, 축복이는 통로 앞 경사로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깨달았다. 내가 퇴사를 결심한 진짜 이유를. 그래. 나는 나 때문에 퇴사를 했다.
그 날 남겼던 사진.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 때문에 내 일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일하면서도 아이 생각하고 신경 쓰느라 힘들 나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 좋은 시터도, 좋은 기관도 많지만,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더 신경을 쓰는 나 때문에 나는 그만뒀던 것이다.
그 날 결심했다. 어떤 날이 오더라도 절대 아이를 원망하지는 말자고. 나의 결심은 나의 것. 아이는 요구한 적 없다. 어쩌면 아이는 잘 적응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가 적응할 자신이 없었을 뿐.
회사 어린이집에 신청했다가 똑 떨어진 건, 그런 상황에 안심하고 보낼 기관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며 살아가는 워킹맘은 참 많이 있었다. 워킹맘이 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은 분명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내가 더 주체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자, 이제 나는 더 주체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보자. 한번 더 결심했다.
그전에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남아있었다. 나의 육아 동업자 내 남편에게.
"오빠, 내가 욕심내던 일을 그만두고 엄마가 된 걸 아이들은 절대 모를 거야. 고마워하지도 않을 거야. 게다가 아이들은 그렇게 하라고 말한 적도 없어. 하지만 오빠는 달라. 오빠가 기억해 줘. 나의 멋지던 워킹우먼 시절을. 나도 꽤나 멋지게 내 몫의 일을 해나가던 사람이었다는 걸."
나의 결정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동조했고, 축복이의 하루에 엄마가 함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 그에게는 마음껏 생색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