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존감이 쿵 떨어지던 날

전업 주부라는 말이 왜 이리 어색한가요?

by 쏘냐 정

"안녕하세요. 저는 전업주부 정 소령입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 삼성전자에서 마케팅을 했었는데 퇴사를 하고 지금은 아들 하나 키우고 있습니다. 퇴사를 하고 나니 이제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워보자 싶어 이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어느 회사, 어느 직종, 어떤 직급. 그 타이틀을 떼고 처음으로 나를 소개하는 날이었다. 그저 전업주부라 말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색했다. 아니, 어쩌면 싫었던 것 같다. 이상하다. 분명 나는 당당히 퇴사를 했다. 엄마로 사는 내 삶이 그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서서 나를 소개하자니, 사람들이 알았으면 싶었다. 내가 그냥 주부 아니고 대기업에서 마케팅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소개를 하면서도 참 구차스럽다는 걸 알고 있었다. 끝내고 나니 다시 돌아가 그 말은 지워버리고 싶었다.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광고해버린 것 같아서. 그런 내가 참으로 초라해 보여서 슬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몇 년간 나는 그런 소개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엄마들끼리의 자리에서는 우리 모두 같은 엄마로 생각하면 그만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들끼리 모여있어도 직업을 가진 엄마에 대한 동경이 난무했다. '엄마'라는 지나치게 스펙트럼이 넓은 그 타이틀은, 엄마들이 가진 모든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위의 소개를 했던 건 퇴사를 하고 그다음 해 3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신청한 평생교육원의 '티 인스트럭터' 과정 첫 시간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비록 퇴사는 했지만, 그래서 내 수입은 없지만, 멈춰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청한 교육의 첫 시간, 나는 한번 더 나를 대면했다.


과정이 끝나고 과제 발표를 하던 날, 나는 또 한 번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함께 과정을 했던 내 또래 직장인의 발표에 쏟아지던 감탄들. "이야, 역시 ㅇㅇ다니는 사람은 달라." 겉으론 나도 동의하는 듯 웃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다르다는 건지.


그땐 몰랐다. 그 모든 감정이 나의 자존감 하락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마케터가 되기 전 나는 아나운서를 꿈꿨었다. 함께 아나운서를 꿈꿨던 친구나, 내가 준비하던 당시 아나운서로 합격한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들과 내가 비교되기 시작했다. 내가 아나운서의 꿈을 계속 꾸었다면 저들처럼 예쁘고 멋있었을까. 가끔은 SNS 속의 멋진 사람들이 그저 부럽기도 했다. 그럴 때면 쇼핑을 했다. 그들의 피부가 부러운 날은 화장품을 마구 검색했고, 옷이 날개인가 생각이 드는 날은 옷을 마구 사들였다.


이 역시 자존감의 문제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지나치게 부럽거나, 부러우면서도 미운 마음이 들 땐 나의 자존감을 돌아보세요' 어떤 책이었던가, 블로그의 글이었던가. 이 조언을 보는 순간, '아, 이거구나' 싶었다. 나 혼자 지나치게 부러워하다가 질투가 나는 듯 미웠다가.... 그런 감정을 반복해 경험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자존감을 먼저 돌아보기로. 나는 어떤 때에 내가 가치롭다 느껴지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로소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품으로도, 옷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여전히 나의 내면이 비어있다는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내면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을 집어 들었다. 시간과 장소에, 그리고 금전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당장 나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시작했다.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가 보이는 그 날에, 유감없이 날아오르기 위해서.

이전 02화결정은 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