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커뮤니티

엄마, 적응의 문제에 부딪히다

by 쏘냐 정

러시아의 화가 '미하일 브루벨'의 '데몬'을 사랑한다. 대학 때 러시아 예술 시간에 접한 '데몬'은 악마임에도 너무나 인간적인 눈빛을 가지고 있어 정이 갔다. 브루벨은 레르몬토프의 장면 서사시 `데몬`에 감명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 지상으로 쫓겨난 악마인 이 데몬은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데몬이었으나 인간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쓸쓸히 슬프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엄마의 세계에 던져진 나는 그 데몬과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커뮤니티에 자연스레 편입되고 싶었지만 왠지 그건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이전의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의 인간관계를 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 같았다. 비슷한 사람들.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 그래서 특별히 다른 노력 없이도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그랬다. 같은 시험을 통과하고 들어 온 사람들은 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좀 다르더라도 일 이야기로 들어가면 각자의 아이덴티티 따위 뒤로 밀려났다.


엄마의 세계는 달랐다.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들어서기엔 너무 낯설었고 너무나 달랐다. 기본 스펙트럼이 넓어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더니 이미 형성된 그룹들은 친근하게 서로를 부르며 그들의 세계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끼어들어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 첫째는 유독 겁이 많은 아이 었다. 어른들에게 라면 쉽게 다가갔지만 또래는 더 겁내는 아이 었다. 또래가 없는 구석을 찾아 혼자 노는 아이에게서 다른 엄마들 눈치를 보며 겉도는 나를 보았다. '저 엄마들과 친해지면 우리 아이가 친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생각했지만 마음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했지만 늘 마음이 어려웠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엄마의 모습으로 서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한 엄마가 다가왔고 인사를 나눴고 갑작스레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 시간을 나누며 깨달았다. 엄마의 세계가 특별히 다르지 않음을. 그저 아이를 낳기 전 여자였던 이들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뿐임을. 지금도 그때 다가와줬던 친구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냥 우리 다 같은 사람들 같은 엄마들이다 생각하고 다가서면서 이 세계에서의 인간관계가 편해졌다. 여기엔 하나의 규칙이 있다. 예전의 나를 잊는 것이다. 오직 엄마인 지금에 집중할 것. 그러면 우리는 엄마라는 동질감으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랬었다. 엄마 생활의 초기. 나는 먼저 그 세계를 평정한 이들의 엄마 포스에 기가 눌렸었다. 아무도 내 앞에서 기를 과시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건 어쩌면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생각. 과거의 나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내가 '엄마'라는 이름 앞에 자존감이 꺾여 있었기 때문이리라. '엄마'인 내 모습에 내가 적응하지 못한 탓.


그래서일까. 나는 엄마라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인정하면서 더욱 자유로워졌다. 전 마케터라는 타이틀보다 엄마의 타이틀에 더 큰 무게를 싣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세계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즐거워졌다. 무엇보다 그들과 육아의 짐을 나눌 수 있었다. 공동육아의 즐거움. 체력이 바닥을 칠 때 그들은 손 내밀어 주었고 덕분에 잘 이겨내 왔다.


마음을 열었더니 생각지 못했던 좋은 커뮤니티를 만났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생각이 내 마음밭을 더 단단히 했다. 앞으로 나갈 용기. 어쩌면 그 따뜻함이 내 엄마 자존감에 작은 씨앗이 되어준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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