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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Apr 05. 2023

무엇이 되고 싶은가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쓰는 일에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머뭇거린 이유는 ‘쓰는 영역’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분명한 목표가 없는 듯 느껴져서였다. ‘쓰는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말문이 막힐 게 분명했다.


첫 책을 쓴 이후 나는 계속해서 쓰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왔다. ‘책’을 쓰는 일 말고 ‘쓰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책을 쓰고 출간하면서, 출판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인지를 알게 됐다. 단지 글을 잘 쓰는 것만으로는 책을 만들 수 없다. 출판사는 내가 쓴 글이 얼마나 시장의 니즈와 잘 맞는지를 살핌과 동시에 나의 유명세를 가늠했다. (물론 언제나 무명의 혹은 소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출판사가 있고 덕분에 나 역시 저자가 되는 기회를 얻었지만 말이다)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나는 자주 위축됐다. ‘쓰는’ 일보다 ‘파는’ 일에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일이 출간이라는 걸 알고 나니 더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쓰고 싶었다. ‘첫 책이 나오면 바로 에세이에 도전해야지’하는 마음은 쏙 들어갔지만 계속 ‘쓰는’ 일을 마음에 품고 뭐라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또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을수록 키보드를 두드리며 빈 페이지를 글자로 채워 나가는 것만으로는 쓰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커져갔다. 물론 모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건 그 자체로 글감이 된다. 문제는 한번 쓴 이야기는 이미 쓴 글감이 되어버린다는 것. 계속 쓰고 싶다면 쓰기에 앞서 ‘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지난 몇 년을 돌아봤더니 ‘채우겠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자연스럽게 하게 됐던 것들이 몇 개의 덩어리로 보였다. 그래서 정리해 보기로 했다.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나의 전략 세 가지.


1.     내 글의 주체는 나, 나의 경험이 필요해!

글을 쓸 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전체 주제를 잡는 일이다. 그다음에는 목차를 잡고 목차별 주요 내용을 적는다. 이렇게 해보고 들어갈 내용이 한 편의 글이 되기에 충분한 분량이 된다고 판단하면 쓰기 시작한다. 내가 가진 경험이 풍부해야 쓸 분량도 충분해진다. 그렇다면 충실히 사는 게 내가 계속 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계속 쓰고 싶어서 더 많이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단지 쓰기 위해서 다양한 도전을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을 다채롭게 채우고 싶다.’고 생각한 게 새로운 도전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동기가 되어주었다는 뜻이다. 하고 싶으면서도 망설여지는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했다. 비어 있는 삶은 글이 될 수 없지만, 실패하더라도 채워 놓은 시간은 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글은 삶에, 삶은 글에, 동력이 되어주었다.


다시 마케팅 일을 시작할 때는 커리어를 쌓다 보면 마케팅 책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매거진을 창간할 때는 몇 년이 지나면 매거진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지난 2년 동안 여러 가지 시작을 했지만, 매번 갖가지 이유로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뒀기 때문이다. 결국 마케팅에 대한 책도 매거진에 대한 책도 쓰지 못했다. 대신 시작과 끝으로 채워진 삶이 또 하나의 소재가 되었다. 덕분에 여섯 가지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삶에 대한 책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초고는 책이 되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두 번째 책 계약을 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해보려고 한다)


2.     ‘나’ 이상의 것을 채우기 위한 읽기

김영하 작가는 글쓰기 수업에서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 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말 나도 그렇다. 쓰는 건 나의 바닥을 만나는 일. 쓰면 쓸수록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된다. 빈 종이를 채우려면 내 안에서 끄집어낼 게 충분히 많아야 하는데 텅 비어 있어 더 꺼낼 것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읽었다.


읽는 것으로 나를 채운다는 감각이 확실해지고 나니 전에 없던 조바심이 생겼다. 읽는다고 다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기억력 좋은 어린 날의 나는 어디 갔는지, 언젠가부터 기억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아졌다.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도 이미 나는 앞에서 읽는 것을 망각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채우려고 읽는데 잊는 게 더 많아 불안한 마음을 그 책이 위로했다. 그래. 그게 당연한 거라니 잊는 걸 불안해하는 대신 인정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독서를 끝낼 때마다 밑줄 친 문장을 노션에 저장하고, 짧은 감상을 인스타그램에 남긴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긴 감상을 남긴다면 더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짧게라도 남기기로 했다. 긴 글 쓸 여유를 기다리다가 머릿속에서 휘발되어버리는 경험을 몇 번 한 후에 내린 결론이다.


3.     인터뷰를 통해 인사이트 더하기

계속해서 쓰기 위해서 내가 찾은 또 하나의 방법은 인터뷰다. 2021년 친구와 함께 <VACAY>라는 매거진을 창간했다. 폭넓은 이야기보다 하나를 깊이 파길 더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레 인터뷰 기사를 더 많이 맡게 되었다. 덕분에 인터뷰의 세계에 입문했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탐닉하는 내게 인터뷰는 신세계였다. 보석 같은 스토리를 가진 타인에게서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건, 나처럼 자신만으로는 부족한 사람이 세상에 필요한 글을 써내기에 딱 좋은 방법이었다. 좋은 인터뷰이를 찾아 좋은 질문을 만들고 좋은 대화를 통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대답을 끌어내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풀어내는 일. 한 명이 평생을 살아도 다 얻어내지 못할 경험을 다채롭게 써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쓰는 일에 있어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내가 먼저 나를 믿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책 한 권을 내놓고 여러 가지 경험과 고민을 해 본 후에야, 그게 단기간에 될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장기전이라면 더더욱 필요한 건 내 믿음이다. 글쓰기 영역에서 나는 아직 새내기다. 오래전부터 써온 사람들과 비교하며 작아지는 대신, 뒤늦게 시작했지만 계속 쓰고 있는 나를 격려하고 싶다. 지금 나는 작은 나무지만, 2~30년 후에는 훌륭하게 성장해 있을지 누가 아는가? 내 나이 70쯤엔, 마흔이 다 되어 첫 책을 내고 지지부진한 글을 꾸준히 쓰다가 어느 날 멋진 글을 써낸 작가로 소개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날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읽고 쓴다.


사진: Unsplash의Etienne Girardet


*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 레퍼런서Ⓡ 정소령 님과 창고살롱이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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