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실패와 새로운 출간 계약, 그리고 출간.
“계획 없어요.” 두 번째 책은 안 쓸 거냐는 말에 계속해왔던 대답이다. 정말로 계획이 없었다. 책으로 쓸 만큼 가치 있는 이야기가 내 안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 삶이 더 가득가득 차면 쓸 수 있겠지. 그때까지 기다리자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여섯 번째 도전한 일이 끝났다. 이번 일은 더 큰맘 먹고 시작한 일이어서 끝을 선택한 뒤 타격이 더 컸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다시 책을 쓰기 시작했을까? 지난 2년 동안 쓰지 못할 이유를 매일매일 쌓아 올렸으면서, ‘써야겠다’ 생각하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금방 끝나버렸지만 2년에 6개나 시작한 내 이야기가 2년 전의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첫 책이 10년 전 막 엄마가 된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면, 내가 직접 만든 작은 판들에 대한 이야기는 2년 전의 소령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뭐라도 하나 제대로 성공해야만 스토리가 완성되는 걸까? 나처럼 큰 성공을 바라지는 않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큰일 이룰 것도 아니면서 구태여 왜 시작하냐는 마음의 질책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냥 그 자리에서 뭐든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줄지어 떠오르는 질문들이 쓰지 못할 이유를 빠르게 눌러 버렸다.
주제를 정했으니 일단 목차부터 짰다. 36개의 목차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만큼 쌓였구나. 지난 2년을 돌아보니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시간의 기록이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확신도 생겼다. 그러니 시작해 보기로 했다. 초고 작성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까 써보고 안 되면 탁탁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3주 만에 초고가 완성됐다. 첫 책은 자료 조사에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이번 책은 지난 2년의 경험이 자료인 셈이어서 바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쓰려고 보니 그간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정리를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특히 창고살롱 소모임 살롱에서 나눈 ‘내 판은 내가 만든다’와 ‘시작만큼 응원받아야 할 끝에 대한 이야기’ 서사 공유는 그 자체로 내 지난 시간의 정리였기에 그때 만든 발표 자료는 이번 책 목차의 큰 줄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완성된 원고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출판사는 컨셉만 살펴보고 판단할 터. 빠르게 출간기획서를 써서 투고부터 해 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메일함에는 거절 메일만 돌아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절이 아프지 않았다. 아마 쓰면서 이미 거절을 예감해서일 거다. 그저 잘 쓴 글이 전부가 아닌 출간의 산을 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쓰면서 했었다. 1차 투고를 통해 그 생각을 확인했으니, 이번 투고는 부족함을 파악하는 용도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여겨보았던 출판사에 진심을 담아 메일을 썼다. 1차 투고 때는 거절이 두려워 차마 보내지 못했던 출판사였다.
“안녕하세요. 이미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올해 출판할 책의 저자 섭외가 모두 끝났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무명작가인 제 글이 이 출판사의 책이 되기 어려울 거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원고를 보고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투고합니다.”
투고한 이래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며칠 뒤 받은 답장 안에는 출간은 어렵겠다는 거절의 말과 함께 원고에 대한 정성스러운 의견이 적혀 있었다. 몇 번을 읽었고 여러 번 끄덕였다. 주신 조언이 너무나 적절해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답장을 보냈다. ‘아무래도 이번 원고는 안 되겠어. 다시 용기가 생기면 대대적인 수정을 해서 도전해야지.’ 출간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그때쯤 뜻밖의 메일이 날아들었다. 역시나 이 원고로 출간은 어렵겠다는 말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그런데 그 뒤에 기대하지 못한 제안이 이어졌다. 내 브런치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날들을 기록한 글을 봤고, 그에 대한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내가 써 볼 생각이 있다면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과 행복한 날들에 대한 기록이라… 그게 책이 될 수 있다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써보고 싶어 했던 에세이 아니던가. 책이 되기 어려울 거라고 했던 그 이야기. 바로 답장을 했고, 약속이 잡혔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서 다시 목차를 만들었고, 출간 계약을 하고 초고를 썼다. 엄마가 되면서 멈추어야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쌓은 행복 덕분에 용기를 얻었고, 다시 달리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내 이야기를 담았다. 누군가는 육아 에세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엄마 성장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 책으로 육아서를 쓴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내 이야기를 꺼내 놓지 못한 아쉬움. 어쩌면 나는 출간에 눈이 멀어 시장의 니즈에만 맞추려 한 것이 아니었나 자책하기도 했다. 쓸 만한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고민한 끝에 결정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출간 후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그런 건 싹 잊어버렸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또한 과정이었구나 싶다. 누가 뭐라 해도, 그때의 결정이 나를 조금 더 빠르게 출간작가로 만들어 줬고, 그게 경력이 되어 결국은 에세이를 출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곧바로 당도하는 길도 있지만 돌아가는 길도 있다. 각각의 길에는 장단점이 있고,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지는 마음이라고 한 번 더 되새겨 본다.
두 번째 책 출간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 중이다. 디자인에 올린 원고를 보고 또 볼 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모자란 글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한 걸까.’ 싶다. 그럴 때마다 전장에 나가기 직전의 초조한 마음 대신 용기 냈던 첫 마음, 초고 쓸 때의 마음을 떠올린다. 분명 나는 의미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이제는 내 결정에 책임질 시간.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듬고 또 다듬는다.
* 이 글을 쓸 당시에 막바지 작업 중이던 책이 이번주 화요일에 출간되었어요. 이제 막 서점에서 팔리기 시작한 이 책이 필요한 이들에게 닿기를, 내가 찾은 행복이 독자들에게도 가닿아 또 다른 행복이 되기를, 나의 도전 스토리가 누군가가 다시 도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279702
*이 글은 시리즈 글입니다. 아래 글들을 먼저 읽어주시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1.https://brunch.co.kr/@jsrsoda/148
2. https://brunch.co.kr/@jsrsoda/149
3. https://brunch.co.kr/@jsrsoda/150
4. https://brunch.co.kr/@jsrsoda/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