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작가 사이
2020년 출간된 내 첫 책은 육아서다. 육아 전문가도 아닌 내가 육아서라고? 제일 먼저 그렇게 물은 건 나 자신이었다. “7년째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로 살고 있잖아요. 동시대를 사는 진짜 엄마이기 때문에 분명히 쓸 수 있습니다.” 당시 내가 미친 짓으로 여겼던 책 쓰기 학원 등록을 하고야 말았던 건 ‘상담만 해야지’하고 들렀던 책 쓰기 학원 선생님의 이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7년째 엄마로 살면서도 내가 전문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 엄마는 경력이 되지 않는 거냐?’는 광고 카피에 공감하며 분노하면서도, 정작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나는 안다. 내 아이 육아에 대한 전문가지 모든 육아에 대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전문가란 해당 분야를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실제로 경험하거나 연구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해보자고 생각한 건 책은 공부해서 쓰는 거라던 선생님 말 덕분이었다. 두루두루 공부해서 믿을 만한 내용을 정리하고 나의 시선으로 큐레이션 했다. 이 내용에 내 아이의 사례를 더한다면 생동감 있는 책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첫 책이 나왔다. 처음 나에게 육아서를 쓰라고 권했던 선생님은 “육아서를 쓰면 강의로 연결하기도 좋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육아 분야로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좋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때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육아 전문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책 쓰기는 다음 커리어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과 어떤 방식으로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의 실현이었다. 내가 쓸모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가 책을 쓴 이유였다.
처음에 쓰고 싶었던 건 에세이였다. 엄마로만 살면서도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날들을 써보고 싶었다. 촉망받는 직장인으로 살다가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둔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소령아, 나는 일도 안 하면서 남편이 벌어온 돈만 쓰는 게 눈치 보여.” 퇴사 전에는 연봉도 꽤 높았던 친구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나는 한 번도 내가 남편만 혼자 일해서 버는 돈을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남편이 가지고 오는 월급은 ‘남편은 회사에서, 나는 집에서’ 일한 보상이야. 그러니 그 월급의 반은 내 노동력이지. 나는 안 벌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월급이 반으로 줄어서 덜 쓸 수밖에 없는 거야.” 이런 순간마다 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한다면 쓸모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왜 육아서를 쓰라는 조언에 홀랑 넘어갔냐고 묻는다면, 일단은 출간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책의 주제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의 나’다. 내가 경험했거나 현재 하는 일에 관해서 써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으니까. 당시 나를 분석해 보자면 마케터 경력은 이미 7년 전에 끊어졌고, 퇴사하자마자 차(tea) 공부를 해서 자격증도 땄지만, 출판 시장은 ‘차’라는 주제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지금 내가 엄마로 살고 있으니 삶을 담은 에세이는 쓸 수 있지 않겠냐 물었더니, 선생님은 아무도 그런 책을 사 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내가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면 말은 달라졌겠지만 나는 너무나 평범한 전업주부였으니까. 쓰더라도 책이 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이었다. 엄마를 대상으로 하는 책을 쓰고 싶다면 에세이 대신 육아서를 써보자고 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행동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또 그냥 넘어간다면 오래 후회하게 되리라는 느낌 때문에 큰맘 먹고 책 쓰기 학원 등록까지 결심한 터였다. 그래. 책이 되지 못할 글 대신에 책이 될 수 있는 글을 쓰자. 일단은 작가가 되어보자. 중요한 건 에세이냐 육아서냐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 책인가 아닌가 아니겠어.
그렇게 나는 만만치 않은 길에 들어섰다. 첫 석 달은 자료 조사와 정리에만 내 모든 시간을 써야 했다. 실제로 글을 쓴 시간은 딱 3주. 그러니 실제로 첫 책 집필 과정은 쓰기라기보다는 공부에 가까웠다. 엄마인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엄마와 아이가 모두 개별적 인간으로 단단히 서는 삶. 자기 주도가 가능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사실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시간이 중요한 나를 위해서였다. 그런 생각을 담아 육아서를 만들어 갔다.
<엄마 육아 공부> 내 안과 밖의 능력을 모두 탈탈 털어 완성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며칠 만에 베스트셀러 타이틀도 달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2쇄도 찍었다. 책이 나오자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불러주기 시작했다.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진짜 작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만난 한 브랜딩 회사 대표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책을 10권 썼다고 해서 사람들이 나를 작가라고 하진 않아. 그냥 대표님이라고 하지. 나는 책을 쓴 브랜딩 전문가인 거야.” 출간 이후에 육아 강의를 해보라거나 육아 칼럼 제안이 들어온 적은 있지만, ‘쓰기’의 자리에 초청된 적은 없다. 글쓰기 프로젝트를 이어오고는 있지만, 그건 사실 내가 직접 만든 판이다. 누군가가 초청한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이들을 초대한 셈. 사실 세상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보다 무엇을 썼느냐가 그 사람을 정의한다.
책을 쓰면 저자가 된다. 하지만 다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작가는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다시 ‘문학 작품’을 찾아보면 ‘문학에 속하는 예술 작품. 시, 소설, 희곡 따위를 이른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작가란 문학이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모든 단어에는 사전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가 있고 시대가 변하면 단어의 정의 역시 변화하기도 한다. 덕분에 나도 작가로 불릴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불릴 때마다 부끄럽지만 행복하다. 그럴 때마다 작가라고 불리고도 당당하려면 더 좋은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책을 쓴 덕분에 다양한 문이 열렸고 부끄럽지 않게 작가로 불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장래 희망’도 생겼다. 그래서 계속 쓰는 중이다. 일단은 작가 대신 쓰는 사람의 명함을 만들어 두고.
*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 레퍼런서Ⓡ 정소령 님과 창고살롱이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