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충실히 흘러 복직 시기가 다가왔다. 복직 준비의 시작은 아이맡길 곳을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첫번째 옵션이었던 회사 어린이집 추첨에 떨어졌다. 대기 순서마저 끝번호라서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미리 대기를 걸어두었던 동네 어린이집에도 자리가 없었다. 시어머님은 교사로 근무 중이셨고, 친정엄마는 멀리 부산에 사시는 데다가 팔까지 다쳤다. 복직이 코앞인데 생각해두었던 옵션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물론 몇 개의 선택지가 더 있다는 것도 안다. 시터 이모님을 알아보거나, 시어머님이나 친정엄마와 다른 방법들을 진지하게 의논해볼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퇴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이 맡길 방법을 애써서 더 찾는 대신 그만 찾기를 선택했다.
퇴사하고 오랫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퇴사했다고 말해왔다. 앞서 말했던 갖가지 옵션이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을 때는, 회사보다 아이에게 내가 더 필요한 것 같아서라고 결론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지켜지지 못한 고과'가 결정적인 이유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때 그 약속이 지켜졌다면 나는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그것때문에 '회사에서의 내 가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 게, '돌아가기 위해 애쓸 마음'이 없어진 게, 다 내 미숙함 탓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런 약속을 믿지 말았어야지. 고과 못 받은 것 정도로 가치 운운해가며 실망하는 건 너무 미성숙한 거 아냐? 다들 비슷한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데 왜 너는 꺾여버렸어? 실망하는 마음은 네가 약하다는 증거야.' 이렇게 내 마음이 자꾸 나를 비난했다.
그로부터 거의 십 년이 흘렀고, 이제서야 이런 마음을 글로 꺼내놓을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창고살롱의 '레퍼런스의 글' 제안을 받고 첫 글로 이 이야기를 썼다. 비록 회사에서 나는 꺾여버렸지만, 내 삶까지 꺾인 건 아님을 확신하기에 생긴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 나처럼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만 그런게 아니라고,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타인을 위로하듯 자신도 위로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꺾였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을 위로하는 대신 비난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위해 쓴 이 글이 또다시 나의 도움이 되었다. 친절하고 다정한 피드백을 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건 조직의 잘못이니 자신을 탓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 새롭게 들렸다. 특히 "왜"냐는 질문이 마음에 콕 박혔다. "왜 그게 쏘냐님 잘못이라고 생각했던건가요?" 내가 너무 미숙했다고만 생각했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깊이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일단, 오랜동안 나를 괴롭힌 생각의 시작이 틀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켜지지 못한 고과'는 내 퇴사의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다. 그건 회사 안에서 내가 채울 수 있는 가치를 확인하는 결정적인 이유였을 뿐이다. 단지 고과 따위에 꺾인거냐는 내 마음의 비난에 반박할 논리가 거기에서 생겨났다. 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보여준, 나에 대한 조직의 태도에 반응한 것 뿐이었다. 전에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된거다. 피상적이게만 들리던 조직의 부품 뿐이라는 나의 위치가, 선명한 상이 되어 맺혔다.
하지만 아직 또 하나의 의문이 남아있다. 그것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견디고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나는 그녀들 중의 하나가 되지 못하고 물러나 버렸는가. 고과 협상까지 해가며 욕심을 내던 나는 그 자리를 맹렬히 원하지 않았던가. 왜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냐는 질문의 답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어떤 어려움도 버티고 극복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물러났던 거다. 난 그게 내 잘못이라 여겼다.
그 답을 알고나니 다시 궁금해졌다. 왜 나는 버티는 대신 버리기로 했는가. 그리고 깨달았다. 내 선택 기준의 최상위에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회사에서의 내 '가치'를 확인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회사가 아닌 가정에서의 내 '가치'를 가늠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근무할 시간에 집에서 아이와 보내는 게 더 가치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확신은 없었다. 당시 내가 가진 확신은, 아무리 열심히 한들 회사가 내 아이만큼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거라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회사대신 집에 머무는 삶을.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 보내온 지난 10년동안 참 많이 변했다. 정답보다는 가능성을, 목표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밖에 있던 기준을 내 안으로 옮겨와 '나'에 둘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회사에서의 내 가치나 아이가 생각하는 내 가치를 저울질했던 당시의 기준은 내가 아니었다. 내 가치 기준이 밖에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보다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이제 이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것도 그래서가 아닌가 싶다. 어린 날의 내가 가지고 있던 확고하고 편협한 기준을 무너뜨릴만큼 따뜻하고 충분한 날들이 켜켜이 쌓였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동안 말이다.
그 시간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게 어때서."라고 말하는 '고과' 사건 하나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을만큼 나는 복잡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래 곱씹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종종 그런 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나여서, 힘껏 행복을 고민했던 나여서, 아이들과의 평범한 날들에서도 계속 생각할 거리를 찾아낸 나라서, 글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종종 생각한다.
덕분에, 곧 나의 두번째 책도 나온다. 그저 무작정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고 싶었기에 행복을 찾으려 애썼던 날들 속에서 기어코 찾아낸 따뜻함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아프고, 슬프고,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들 하나하나 오래 생각하며 곱씹었던 그 날들의 나에게 '덕분에'라는 말을 한번 더 보내본다.
산책 길 내 그림자에서 다시한번 내 존재를 확인한다. 언제나 '나'는 중요하다.
* 본 콘텐츠의 일부 내용은 창고살롱Ⓡ 레퍼런서Ⓡ 정소령 님과 창고살롱이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