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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Aug 11. 2023

요린이 엄마가 유일하게 잘하는 음식

"엄마가 한 음식 중 제일 맛있어."

비가 그쳐서 이제 태풍이 지나갔나 했더니, 다시 비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비가 다 그친 줄 알고 "엄마가 떡국떡 사러 나갔다 올게." 했는데 다시 비라니... 그렇지만 약속했으니 어쩔 수 없지. 얼른 집 앞 마트에 나가 떡국떡을 사 왔다. 사실 아이들이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이것만큼 한 끼 때우기 좋은 음식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오늘 점심은 명란 떡국이다.


어제부터 아이들은 명란 떡국 노래를 불렀다. "엄마, 명란 떡국 해주면 안 돼?", "난 명란 떡국이 좋은데~" 이렇게 아이들이 찾는 음식은 내가 해준 여러 가지 중 명란 떡국이 유일하다. 아직 7살, 눈치를 챙기기엔 턱없이 어린 둘째는 명란 떡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이건 우리 엄마가 유일하게 잘하는 음식이야." 7살보다는 눈치가 빠른 11살 형아는 재빠르게, "아니야. 엄마가 잘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얼른 동생을 타박했고 말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엄마 10년 차 꾸준히 요리를 못 하는 요린이다. 그 이유를 꼽자면 아마 첫 번째로는 나의 열정 없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열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름 자취생활 7년 차에 결혼을 했으니,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친 기간도 꽤 길었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하고 나서 레벨이 다운됐는고 하니, 그건 바로 입맛의 차이 때문이었다. 나는 지나치게 싱겁게 먹는 사람. 실제로 거의 간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같이 사는 사람 입맛에 맞을 리가 없다. 신혼 초, 내가 끓인 국에 남편이 소금을 탁탁 쳐서 먹는 걸 보고서는 요리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게다가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나와 달리 남편은 그저 감만 가지고도 맛있는 음식을 척척 만들어 냈다.


그래. 요리는 타고남의 영역이었던 거다. 유전자에 음식을 욕망하는 성향과 세밀한 맛을 구분하는 미각이 있어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내가 반짝 잠시 자신 있게 음식을 만든 시기가 있긴 했다. 그건 바로 아이들의 이유식 시기. 어차피 간이 필요 없는 음식. 이 시기의 아이들은 내가 만든 이유식을 맛있게 먹었다. 문제는 유아식을 시작하면서부터. 약간의 간만 한 음식에서 외부 음식도 먹는 시기로 넘어가면서 아이들은 엄마의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내 입엔 소금을 조금만 더 넣어도 너무 짰다. 그렇게 짠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른인 내가 먹어도 안 될 것 같은걸.'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건 너무 짜." 하면서 남편에게 간을 보라고 하면 남편은 말했다. "이거 너무 싱겁잖아. 하나도 안 짜." 결국, 아이들은 엄마의 음식보다 아빠의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식사할 시간에 집에 있는 게 아빠가 아닌 엄마라는 사실을 빼고는, 내가 요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건 너무나 치명적인 이유이기에, 지금도 평일엔 내가 밥을 차린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럼 그냥 내 입에 많이 짜게 음식을 해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내 혀는 약간의 소금에도 '너무 짜다'라고 반응한다. 문제는 그 이상의 짠맛은 모두 똑같이 너무 짠맛이다. 내가 간을 훨씬 많이 해서 너무 짜게 만든 이 음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당한 짠맛인지, 보통 사람들에게도 너무 짠맛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종종 내 나름대로 간을 많이 했는데 내 입에도 맛있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자신 있게 음식을 내놓고 말한다. "이건 안 싱거울 거야. 진짜 맛있어." 하지만, 매번 싱겁다는 걸 어쩌랴....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유일하게 잘하는' 음식이 생겼다. 그건 바로 명란 떡국이다. 간하기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해 줄 뿐 아니라 아주아주 간단하고 맛있기까지 하다. 왜 명란떡국만은 내가 해도 모두가 만족하는 걸까? 한참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다. 내 혀가 젓갈의 짠맛은 너무 짠맛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니 젓갈을 넣어 간을 하면 대중적인 짠맛까지도 허용가능하다. 심지어 적당한 간을 판단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처음 깨닫고는 며칠을 매일 명란 떡국을 끓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달라고 할 만큼 아이들도 좋아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이쯤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명란떡국 레시피를 공개해 본다.


0. 준비물: 물, 육수 재료 (멸치, 다시마, 건새우 등 혹은 동전육수), 떡국떡 (나랑 아들 둘이 먹을 때 500g 정도 쓴다), 계란 두세 개, 대파 (조금만 잘라둔다), 명란 (대충 원하는 만큼)


1. 물을 적당히 잡고 육수를 낸다. 처음엔 멸치, 다시마, 건새우 등등을 넣어서 직접 육수를 냈었는데 요즘은 동전육수를 사용한다. 막상 완성하고 보면 명란맛이 강해서 육수가 그리 중요할까 싶은데, 어느 날 육수거리가 없어 대충 육수내고 끓인 날 알게 됐다. 명란 떡국에도 육수는 매우 매우 중요하다.

2. 물이 끓으면 계란물을 휘휘 풀어넣어준다.

3. 명란을 넣는다. 나는 보통 두 세 덩어리를 쓴다. 2번과 3번의 순서가 바뀌면 계란과 명란이 한 덩어리가 된다.

4. 파를 넣어준다. 없다면 생략해도 된다.

5. 떡국떡을 넣고 2분 정도 끓인다. 생각보다 떡국떡은 금방 말랑해진다.


레시피를 보지 않아도, 그냥 감대로 휙휙 끓여도 괜찮은 유일한 음식. 오늘도 나는 모두가 행복한 명란 떡국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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