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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Oct 19. 2023

남편의 크리스마스 선물

스윗함에 대한 고찰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나 소령이가 좋아할 것 같은 걸 발견했어.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 말을 하는 그에게서 어떤 기대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걸 좋아할 거라 확신하는 게 틀림없다. 


이거 딱 소령이 스타일이야.


"뭔데?" 내가 묻자 바로 링크를 하나 보낸다. "이거 봐봐. 이거 딱 소령이 스타일이야." 와디즈 펀딩 링크였다.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을 느끼게 해 준다는 인센스 스토브. 작년 크리스마스에 갔던 제주도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떠올랐다. 고급스러움보다는 아기자기함과 코지함에 빨강과 초록의 초화가 깊고 포근하게 묻어나는 특유의 매력이 있는 크리스마스 무드. 바로 그것이. 


짐을 늘리지 말자고. 특히 이런 소품은 필수품은 아니니까 사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 왔으면서도, "그럼 이거 사 줘." 해버렸다.


한참 와디즈 펀딩에 빠져 이것저것 사들인 시기가 있었다. 나의 프로젝트를 판매하기 위해서 시작한 와디즈였는데, 결국은 판 것보다 산 게 더 많았다. 그때 와디즈의 맹점에 대해서도 자주 느꼈다. 분명 심사를 통해 판매를 결정하는데도, 받는 제품들의 퀄리티가 너무 들쭉날쭉 했다. 직접 펀딩을 운영해 봤기에 왜 그런지 알 것도 같았다. 아무리 심사를 한다고 해도 완성품을 보지는 않으니,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을 거다. 그게 와디즈의 컨셉이기도 하고. 뭐, 여하튼 이번에도 사실은 사진에 비해 형편없이 조잡한 것이 올 지도 모른다 싶어 불안했지만, 그건 받아보고 판단해야지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특별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기는 부부도 아니면서, 올해는 이렇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됐다.


한 달을 기다려 선물이 도착했다.


와디즈 펀딩의 또 하나의 단점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 그리고 내가 원하는 때를 맞춰 구매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의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한 달이나 기다려서, 그런데 또 막상 크리스마스보다 두 달이나 앞당겨 도착했다. 


레드 스토브에 레트로한 컬러의 인센스 콘 박스들까지. 정말 기분 좋은 패키지.

다른 택배 박스들은 부엌 바닥에 던져두고, 내 선물 박스부터 풀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인센스 스토브 하나에 인센스가 여덟 박스. 으음, 이렇게까지 많을 필요는 없지만 책상 위에 펼쳐두고 보니 더 풍족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타고난 인센스 재를 버릴 때 쓰라는 조그마한 삽까지 정말 디테일이 최고. 사진보다 못한 제품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 되었다. 굴뚝을 통해 나오는 연기를 보는 게 좋아서, 인센스 스틱을 태우고 또 태웠다.


그는 스윗한 사람일까?


사실 우리 부부에게 '스윗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둘 다 T 성향을 가졌다. 연애 초기, "꽃 선물은 절대 하지 마. 꽃처럼 아까운 게 없어."라고 했더니 지금껏 꽃 선물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는 남편이다. (프로포즈 때 딱 한 번 꽃다발을 내밀었었다.) 생일이 되면 "딱히 가지고 싶은 거 없는데, 그냥 내가 사고 싶은 거 생길 때 10만 원어치 정도 온라인 쇼핑이나 할게." 하는 아내가 나다.


결혼할 때 예물 리스트에 샤넬 백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샤넬에서 디자인을 하나 골라보라고 했고, 매장에 가서 고르다가 가격을 보고 기겁한 나는 굳이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남편이 그랬다. "그냥 지금 사자. 아마 결혼 예물로가 아니라면 살면서 이런 거 사줄 수 없을 거야." 바로 수긍한 나는 진지하게 가방을 하나 골랐다. 그 가방을 잘 넣어뒀다가 십 년이 지난 최근에야 가끔 들고나가는데, 그 이유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십 년이나 보관만 했더니 가방이 상해 가는 게 느껴져서. 그러니까 나는 이왕 사둔 가방이 덜 망가지게 하는 방법으로 들고 다니기를 선택한 것이다. 


코로나 직전 떠났던 하와이 여행. 하와이라면 명품 가방 하나쯤은 사가야 하지 않겠냐는 남편에게 나는 또 그랬다. "오빠, 나 그냥 한국 가서 더 실용적인 걸로 열 개 살래. 명품 가방 하나보다 그거 열 개가 나에게는 더 만족도가 클 거 같아." 뭐, 그런데도 결국 할인폭이 큰 가방을 하나 사 오긴 했다. 이번에도 남편이 이렇게 이야기해서였다. "이것 봐. 한국에선 이런 가격에 살 수 없다고. 이럴 때 사는 게 이익인 거야." 그래서 가격표를 봤더니, 진짜로 이건 사야 하는 가격이었다. (근데 막상 그게 많이들 사는 그 명품은 아니고 토리버치였다. 심지어 버건디 컬러 가방이 하나 필요했는데 DP 된 버건디 백은 할인을 덜하길래 그걸 들고 가서 직원에게 말했다. "이 컬러에 이 사이즈로 더 많이 할인하는 제품은 없나요?" 그랬더니 저기 구석에서 가방을 하나 꺼내다 줬다.)


으음, 이게 스윗인 지도 모른다.


이 선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남편이 스윗하다는 댓글이 달렸다. 거기에 "저희 그냥 현실 부부예요."라고 답하다가, 그 현실 속에서 늘 감사할 일을 만드는 이 사람이 진짜로 스윗한 남편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미 백 송이 같은 걸 내민 적은 없다. 근사한 이벤트도 결혼 전 프로포즈 외에는 해본 적 없다. 아이들 없이 둘이 카페에도 앉아있을라 치면, 먼저 대화 소재를 꺼내는 적도 없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그의 시선이 내가 아닌 핸드폰에 있는 걸 발견하고, "뭐 봐?" 하면 "응?"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주말이면 가족의 식사를 책임진다. 손에 잡히는 아무 그릇에나 담아내서 지극히 현실적인 분위기를 퐁퐁 풍기지만, 그래서 스윗하단 생각 없이 접했던 식탁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스윗함은 담아낸 그릇이 아니라 담긴 음식에 있는 거였다. 먼저 로맨틱한 여행을 계획한 적은 없지만, 내가 어디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거절한 적이 없다. "그래, 가지 뭐." 가기로 결정하고 나면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을 고민하는 것도 언제나 그였다. 예를 들면, 교통편이라든지 먹을 거라든지. 어쩌면 스윗함이란, 로맨틱한 여행의 스윗한 경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어 하면 거절하지 않고 꼭 필요한 실용적인 것들을 준비하는 마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이렇게 가끔씩 툭툭 튀어나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딱 골라내는 안목이.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애써 고민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흘려들은 적도 없기에 저절로 '이거 소령이 취향인데' 할 수 있는 스윗함이 말이다. 몰래 회사 주소로 택배를 받아 크리스마스에 딱 맞춰 멋지게 포장해서 내미는 대신, 두 달이나 이르게 내가 직접 택배를 받게 했지만, 스윗함은 방식 대신 내용물에 있었다. 


지금껏 나는 나의 남편에게 늘 고맙다고, 좋은 아빠라고, 좋은 남편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스윗함이나 로맨틱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내 남편의 장점 리스트에, '스윗함'도 추가해야겠다. 


오늘 아침에도 인센스 콘을 피우고 글을 쓴다. 요 선물 덕분에 때이르게 크리스마스 머그도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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