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전부처럼,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나에게 글쓰기란..

by 쏘냐 정

"시 쓰기를 좋아합니다."


어린 날에는 낯부끄러워 쉽게 꺼내놓지 못했던 내 취미. 취미라기보다는 피난처에 가까웠을지도 모를 그것은 시 쓰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백일장은 수없이 했지만, 수상은 중학교 2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글을 잘 쓴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왜 수상은 어려웠을까. 중학교 2학년, 백일장 시 부문 1등 상을 받고 보니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얼마나 솔직한지, 얼마나 진심인지. 그게 좋은 글을 만드는 조건이었다.


언제나 친구가 어려웠다. 말하는 걸 좋아해 E 성향이 커 보이지만, 그 외에 모든 부분에서 I인 나는 사실 혼자 있는 게 편했다. 그러면서도 학교같이 단체생활을 하는 공간에서는 혼자면 외로웠다.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나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괴리가 너무 큰 열망이었다. 내면의 편안함은 혼자인 시간에, 외적인 열망은 왁자지껄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의 시에는 그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담았다.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내가, 사실 우정 앞에서는 움츠러드는 꼬마 아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글이었다. 물론 거기에 점층법이라는 기교를 더하긴 했다. 국어 시간에 배운 기술을 야무지게 써먹었다.


그때부터 글 쓰기, 정확히 말하자면 시 쓰기가 내 취미가 되었다. 혼자인 시간에 아무에게도 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시로 썼다. 지금 내가 쓰는 사람이 된 비결의 8할은 그때 수없이 생각하고 썼던 시간에 있다.


아이를 낳고 엄마로 살다가 어느 날, 글을 쓰기로 했다. 어린 날의 시는 취미였는데, 이번에 결심한 쓰기는 취미라기보다 전투에 가까웠다. 무엇인가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잡은 목표가 책 출간.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책 쓰기에만 썼다. 그때만 해도 전투는 일회성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치열한 시간을 여러 번 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산다. 세상일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더니, 나도 그랬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여러 번 목표한 바를 이뤘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건 그다음이었다. 조용히 엄마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은 요란스럽게 휘어졌고, 이왕 쓰는 길로 들어섰으니 본격적으로 직업인 작가가 되겠다는 계획은 맥없이 아래로 휘었다.


작가고 에디터지만 스스로는 작기라기도 에디터라기도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계속 시도하고 쓴다. 매년 하나의 책을 출간하고 있고, 기회가 될 때마다 글쓰기 강의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청탁받은 글을 쓴다. 무언가 계속하고 있지만 사실 직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직업이라고 할 만큼의 돈을 벌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나는 과연 프로페셔널 작가로 살 자격이 있는 걸까. 여전히 매일 하는 고민이다. 그저 쓰기만 해서 이룰 수 없다면, 마케팅이든 홍보든 더 애써봐야 할까. 내가 쓰고 싶은 글 말고 팔리는 글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까. 흠, 사실 안 팔릴 줄 알면서 일부러 그런 글을 쓴 적은 없다. 나는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팔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썼지. 다만 결과가 그렇지 않았을 뿐. 어떻게 해야 하지, 뭐를 해야 하지.


고민이 깊어질수록 글에서 멀어졌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더더 프로페셔널이 되고 싶어서 고민하다 보니 더 멀어졌다는 말은 아이러니 같지만 사실 필연이다. 부담이라는 녀석은 어디에서든 가장 확실한 방해 요소가 되니까.


그러다가 최근에 일을 시작했다. 예전에 회사에서 일하던 나의 경력과 경험을 가져다가 쓰는 일이다. 쓰는 나의 역량이 더해져 한층 능숙하게 해낼 수 있자만, 기본적으로는 대기업 사무실에 앉아서 자료를 만들던 경험 덕에 할 수 있는 일이다. 프리랜서로, 일 한 건 한 건 검토하고 계약해서 시작하고 끝낸다. 그리고 건마다 돈을 받는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가족들과 여행 가는데 보태고, 애들 학원비에 보태고, 스키캠프 보내면서도 마음이 덜 쫄리게 하는 역할 정도는 해 내는 돈이다.


다시 다른 일로 돈을 벌면서 글 쓰는 나를 새롭게 돌아본다. 작년에 남편이 아파서 수술을 하게 되면서, 내 맘속에 들어온 꺼지지 않는 불안. 혹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생계를 책임져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지금 같은 벌이로는 택도 없는데. 지금이라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호사스러운 꿈은 버려야 할까. 아니, 어떻게 하면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도 쓰기를 돈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쓰기는 의미 영역인걸. 내 마음을 살리고 내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 일. 이걸 돈벌이와 연결하면 내 글쓰기는 사라지는 게 아닐까.


그런데 다른 일로 돈을 벌면서 이런 고민이 옅어졌다. '그래. 다른 일로 벌어도 되지. 글이 밥벌이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은 원래부터 현실적이지 않았어.'


글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여유 있어졌다. 무엇을 왜 쓰려고 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매 순간 글쓰기가 전부인 것처럼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프로페셔널 작가로 글 쓰는 순간에는 글쓰기가 내 전부인 것처럼, 다른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글쓰기가 단지 내 일부인 것처럼. 그렇게. 때로는 전부처럼,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때로는 직업으로, 때로는 취미로.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글쓰기를 하나의 꼭지로 써도 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나에게 글쓰기는 취미이기 어렵다 여겨서였다. 시작으로부터 많은 날이 지났고, 마무리를 글쓰기로 한다. 상황이 변했고, 생각도 변해서, 이제 나의 취미 영역에 다시 글 쓰기를 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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