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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16. 2020

엄마, 아이스크림 좀 식혀줘.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식히면 되나요?

"엄마, 아이스크림 너무 차가워. 식혀줘."

"응? 뭐라고?"

"아이스크림이 너무 차갑잖아. 손이 차가워서 먹을 수가 없잖아."

"아들아, 아이스크림은 원래 차가운 거야. 네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댔잖아."




 이제 막 4살이 된 아들과 엄마인 나의 대화. 아이스크림이 차가워서 못 먹겠다니, 따뜻하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식혀달라니. 나는 빵 터져버렸다. 우리 둘째가 세상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두 개 있는데 바로 사탕과 아이스크림. 한겨울이지만 교회를 마치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파인트 하나 주문해서 둘러앉아 먹는 게 우리 가족의 즐거움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건 둘째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이 모두 똑같다. 


 어느 날 마트에 들른 남편이 나의 최애인 초코가 코팅된 아이스크림을 한 박스 사 왔다. 아이스크림과 초코의 결합이니, 아이들도 당연히 좋아했다. 밥을 다 먹으면 하나 주겠다고 약속했더니 한 그릇 뚝딱하고서는 얼른 달란다. 그래서 신나게 하나를 딱 꺼내서 봉지를 뜯어줬는데, 아들이 엄청 곤란한 표정으로 말한다. "너무 차가워. 식혀줘." 아이스크림은 좋지만 차가운 건 싫다. 차갑지 않으면 아이스크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그의 기발함. 식. 혀. 줘. 뜨거운 것은 너무 뜨거워 먹기 힘드니 식혀먹는 것처럼, 손에 닿은 너무 차가운 느낌 역시 식히는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귀여움이라니......


 그래서 "아이스크림은 원래 차가운 거다. 식힐 수 없다."라고 설명해줬다. 그랬더니 "그러면 너무 차가워서 먹을 수가 없는데 어쩌지? 손이 너무 차가워서 잡을 수가 없잖아." 하며 울상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차가워서 문제인 건 손이다. 입이 아니었다. 손으로 바로 잡는 아이스크림은 첫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포크에 꽂아줄까? 그러면 먹을 수 있어?" 했더니 표정이 밝아진다. 얼른 플라스틱 포크 하나 가져다가 아이스크림의 바처럼 꽂아줬더니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식히는 것은 뜨거운 것에만 해당한다는 설명은 해주지 못했다. 차가운 것은 너무 차가우면 '따뜻하게 한다?'라고 설명해주면 되려나. '식힌다'처럼 딱 떨어지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녹인다'라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아이들의 의문을 해결해주다 보면 모르는 게 참 많구나 느낀다. '식힌다'의 반대말을 떠올리는 데 이렇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니.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있어 할 만하다. 천진함. 거기에서 오는 귀여움. 사랑스러움.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 일들이 너무나 큰 웃음으로 다가오는 순간들. 엄마이기 때문에 찾을 수 있는 행복. 




 하루는 가족여행으로 하와이를 가볼까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첫째가 언제 하와이를 가냐고 물었다. 그때 마침 내가 아픈 상황이어서 엄마가 아프면 못 가니 엄마가 안 아프게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당시 3살의 둘째가 자기도 기도를 하겠단다. 그러더니 바로 손을 모으고 말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엄마가 아프면 하와이 못 가니까 엄마 안 아프게 '호'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또 한 번 빵 터졌다. 이 아이가 하와이가 어디인 줄은 아는 걸까. 이것은 엄마를 위한 기도인가 하와이를 위한 기도인가.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꽤 갖춰진 기도를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나님을 부르고, 감사를 말하고, 원하는 것을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까지..... 그 와중에 "낫게 해 주세요"도 아니고, "호 해주세요" 란다. 


 이런 기도를 하더라고 한참을 떠올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행복으로 담다 보면 행복으로 가득 차는 날들. 그것이 육아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사실 엄마는 바쁜데 아이는 느긋한 등원 길엔 소리지르기 일쑤다. 바로 어제도 큰소리 지르고 씩씩거렸던 엄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 것처럼 육아에도 힘든 순간만큼 행복한 순간도 가득하다. 


 이렇게 아이의 기발함을 떠올리며 그저 미소 짓는 아침엔 힘든 일 따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아이 역시 그래 주기를 바라본다. 엄마가 화내던 순간보다 함께 웃던 순간을 더 기억해주기를. 그런 바람으로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고 함께 웃으려 노력한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엄마도 아니다. 그저 충분히 좋은 엄마다.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충분히 좋은 엄마면 충. 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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