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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29. 2020

엄마의 행복에 대한 두 가지 오해

행복은 완성형이 아니랍니다.

 "저는 엄마로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마케터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이 진짜 행복한 길인 줄 모르겠어요. 사실 엄마로 사는 지금이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저희 가족은 모두가 행복하거든요. 남편도, 아이들도, 그리고 저도. 일이 하고 싶은 건 누구의 행복을 위한 건지 모르겠어요."


 어떤 모임에서 내가 했던 말의 요지를 요약하면 이랬다. 둘째가 어린이집을 가면서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일할 기회도 찾아왔다. 마케터의 길은 끊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마케터로 서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또 의외의 답을 마주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래야 했다. 언젠가 퇴사를 할 때와 똑같았다. 일하고 싶은 49보다 엄마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2 컸다. 그쪽이 51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일단 마케터로 나서는 길은 stop 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민이 더 필요했다. 그 후에 내가 말하는 '행복한 엄마'에 대해서 여러 가지 피드백을 들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행복을 말하는 나를 신기해하는 그들이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의 행복에 대한 오해. 크게 두 가지가 생각난다.


1. 전업맘의 삶,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100퍼센트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만 세상에 완벽한 인생은 없고 완벽한 행복 역시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을 뿐.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은 버리지 못했고 과거 나의 찬란했던 순간은 지금도 눈물 나도록 그립다. 요즘은 강남역에 나갈 때마다 눈에 눈물이 어린다. 마지막 출근지였던 강남사옥. 그곳이 떠올라서..


 물론 두 가지 모두를 경험했더니 육아보다는 회사가 낫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고백 역시 워킹맘의 삶이 100퍼센트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님을 안다. 아마 그들도 워킹맘으로 살기 위해 내려놔야 했던 것들 때문에 힘든 날들이 많을 테지. 다만 그들의 51은 워킹맘의 삶에 있기에 그 삶을 선택했으리라 추측해본다. 내가 전업맘을 선택한 것과 같은 이유 이리라...


 행복 뒤에 많은 것들이 숨어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쉽게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래서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을 그렇게 썼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행복이란 그가 느끼는 행복감으로 가득해서 그 외의 것이 들어가지 못할 듯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의 삶은 행복만으로 가득 차기 어렵다. 이면에 있는 제각각의 불행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행복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또 비슷한 모습이 된다. 행복은 참 강렬한 이미지를 가졌다. 그래서 행복의 결말에 도달한 모습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의 과정에 머문 불행들은 제각각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 아닐까?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바꾸는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무한 긍정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지금에 집중할 뿐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버리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집중했더니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느끼면 느낄수록 커져나갔다. 반대로 내가 이미 버린 것들에서 관심을 거두었더니 거기에서 느끼던 행복들은 점점 흐려져갔다. 그렇게 현재와 과거의 불균형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을 단지 전업맘의 삶으로 규정하지 않았기에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전업맘의 삶을 주어진 그대로 충실히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끊임없이 집 밖으로 나가는 나의 본능이 이 삶을 버틸 수 있게 했다. 예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가정은 뒷전으로 하고 일만 할 사람이라고. 그런데 그 성격 덕분에 나는 지금 가정을 지킨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나를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기에. 나는 오늘도 엄마인 것이 행복하다.



2. 아이들에게 잘하는 엄마다.


 "엄마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니 아이들에게 얼마나 잘하겠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 송구하다. 사실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완벽하다기보다는 대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엄마다. 행복한 엄마 노릇의 9할은 이 대충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아이가 무엇을 하든 그저 방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와 아이는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다.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자아가 있다. 내가 나의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고 있다면 아이들은 또 아이들만의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야 한다. 내가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애초에 버렸다. 내가 애를 쓴다고 해서 특별히 아이가 더 훌륭해진다는 생각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아이가 원한다면 그건 최대한 지원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 때문에 종종걸음 칠 일이 비교적 적어졌다. 우리 첫째는 내가 아는 아이 중 가장 늦게 16개월이 되어서야 걸었지만 지금은 잘만 걷는다. 7살 후반에야 한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책 읽는 걸 즐긴다. 그냥 때가 되면 하겠거나 느긋한 편이다. 첫째가 가고 싶다고 해서 영어학원에 보냈지만 숙제를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그냥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안 한 채로 가면 된다. 웅진 학습지를 하고 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 가끔 잊어버리고 못했다고 울상을 짓기에 숙제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 알려준다. 알고도 안 했을 땐 아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숙제하고 받는 스티커보다 더 급하고 달콤한 것을 하고 싶었다던지 하는...


 이런 점에서는 아이에게 참 고맙다. '하고 싶어서'만큼이나 '해야 하니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라서. 그래서 아이가 하지 않아도 그대로 둘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엄마의 행복에는 나의 성향이 아니라 아이의 성향 덕이 더 큰 것 같다.


 아이가 놀다가 엄마를 찾으면 당장 달려갈 때도 있지만 그냥 혼자 놀라고 두기도 한다. 내가 달려갈 수 있을 땐 함께 놀아서 좋고 다른 일을 하느라 혼자 두더라도 혼자 노는 법을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끔 미술놀이 사진을 올리면 대단한 엄마라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도 살짝 찔린다. 사실 나는 미술놀이 후에 치우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대신 아이가 미술놀이하는 동안 나는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놀이를 자주 해 주는 이유는 이 자유시간 때문이다. 가끔 아이가 온몸에 물감칠을 한 흥미로운 광경을 볼 수 있는 재미는 덤이다.


 나는 사실 꽤나 부족한 엄마다.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버럭버럭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족하기 때문에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켜봐 줄 수 있는 엄마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이들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 서로서로 인정하고 사랑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 서로 이해해주자. 그런 마음으로 엄마 노릇을 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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