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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겠다는 소망을 이루어준 시작 버튼

그 순간에 감사한다.

by 쏘냐 정

작년 8월, 갑자기 책을 쓰겠다고 나섰다. 물론 어릴 적에는 나도 자신 있게 말하곤 했었다. 언젠가 죽기 전에 꼭 책을 한 권 쓰고 싶다고. 하지만 그건 꿈이었을 뿐이다. 그저 꿈이었기에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 현실 속에서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본 적이 없었던 말. "나 책을 쓰고 싶어."라는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으로 나왔다.


jeshoots-com-pUAM5hPaCRI-unsplash.jpg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


갑자기 세상에 드러낸 그 말. 하지만 내 안에서도 갑자기 생겨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 하고 싶은지를 묻고 또 물었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책을 쓰고 싶어 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책을 쓰고 싶은 이유가 넘쳐흐른다는 것을.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들처럼 대단한 이유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내 깜냥에 맞는 평범하고 순진한 이유들이 얽히고 얽혀 커다란 실뭉치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




처음 내 마음의 소리가 내 머리에 들렸던 순간은 한 모임 자리에서였다. 현재 전업맘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나의 말에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내가 부럽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놀랐다. 특별히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 걸까 싶어 졌다. 그리고 그런 것이 있다면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어 졌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처음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고 싶다는 그 소망.


그리고 어느 날 평범한 엄마가 쓴 육아서라고 설명된 책을 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질투를 느꼈다. 누군가는 내가 생각만 하던 것을 이뤄내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상했다. 그 사람은 움직였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이러한 차이가 너무나 확연한데, 그렇다면 질투의 이유가 전혀 없는데, 스멀스멀 질투의 마음이 올라왔다.


육아를 하며 매 순간 마주쳐야 했던 질투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 익숙했다. 내 질투를 알아채지 못하던 시절을 지나, 내 질투를 알아채는데 익숙해졌고, 그 마음을 도닥이는데도 능숙해진 즈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도닥이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움직여야 이 의미 없는 질투를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마음에 품었던 그 일을 나도 실행하고 나면 나의 그릇을 내가 알 수 있겠지. 그러면 의미 없는 질투로 나를 갉아먹는 대신 현실적인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 '도전했다면 나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라는 후회를 맞이하기 전에 도전하자. 질투란 것은 내가 직접 움직이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 나에게는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 질투가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이유는 내 마음에 흘러넘쳤고 그럼에도 행동하지 못하던 나에게 행동의 동력이 되어주었을 뿐. 지난번 글에 그런 이야기를 썼다. 어쩌면 타이틀을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고.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하던 사람이 그것을 포기하고 나왔을 때 느꼈던 자존감의 문제는 타이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지나고 보니 진짜 나를 찾는 것이 타이틀을 찾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틀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했다.


책을 쓰겠다는 나에게 무엇을 얻고 싶냐고 묻는 엄마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난 내 책이 나온다고 내 삶이 달라진다거나 돈을 더 벌 수 있다거나 그런 욕심은 없어요. 그냥 지금 내가 노력해서 내 책이 하나 나온다면 나 평생 작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라는 타이틀은 평생 내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는 나오고 나니까 타이틀도 거기에 두고 와야 하더라고. 그런데 왠지 작가라는 타이틀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대답하는 나를 보고 나는 알게 되었다. 어쩌면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타이틀에 대한 목마름일지 모른다고. 나는 아직도 모른다. 실제 현실은 어떨지. 사실 책 하나 나오고 나면 더더욱 작가라는 타이틀이 두려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시작했던 그때의 나는 솔직히 욕심이 났다. 평생 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 타이틀이.


'행복한 엄마를 모티브로 에세이를 한번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 살아온 나의 지난 8년이 나에게 남겨준 것을 기반으로 내 엄마 경험을 경력으로 만들어보자. 그 경력을 버리지 말고 고이 정리하여 작가가 되어보자. 이 것이 내가 책을 쓰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엄마는 경력이 안 된다는 말이 가슴에 아리도록 사무쳤던 날들에 나는 반기를 들고 싶었다.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한, 나만의 허무한 외침이 될지도 모를 그 생각에 나는 사명감마저 느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꼭 해야 할 사람인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마로 살아왔던 나의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했지만 엄마라는 타이틀 앞에 자존감이 추락하는 현실 역시 너무나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엄마의 시간이 가치 있어 지기를 바랐다. 누군가가 엄마의 시간을 더 행복하게 지나갈 수 있게 돕는 책. 그리고 누군가는 내가 써 내려간 그 책에서 내 엄마 경력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책. 내가 엄마로만 산 시간 8년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면 또 다른 엄마들도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 그런 소망을 가지고 나는 책 쓰기에 뛰어들었다.


jessica-lewis-4VobVY75Nas-unsplash.jpg Photo by Jessica Lewis on Unsplash


처음 시작은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벽에 부딪혔다. 에세이로 나의 삶을 풀어내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엔 내가 너무 부족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밑천이 없는 미천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것이 없다면 그것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육아서를 쓰기로 했다. 이것은 나를 시험하는 도전이며,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 재료가 되어줄 밑천을 만드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움직인다면 나는 시작, 경험, 실패, 성공의 벽돌을 쌓게 될 터. 조바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 언젠가 누군가를 도울 밑천이 더 많아질 나를 꿈꾸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히 쌓아보기로 했다.


물론 두려웠다. 이러한 이유들을 매일 되뇌고, 해야만 한다고 반복해 생각해보아도 두려웠다. '시작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던 중에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전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말. 그 말이 머리를 쳤다. 그래. 나는 최근 몇 년간 무언가에 도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실패한 적도 없었다. 덕분에 편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득 겁이 났다. '도전하지 않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러한 고민이 '도전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는 삶 대신 도전하고 실패하는 삶을 택하자.'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시작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실패하더라도 괜찮다고. 그렇게 나에게 말할 수 있게 되자 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는 끝이 아닐 게다. 도전하는 사람이 된다면 실패를 밟고 올라 언젠가는 성공도 말하게 될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갖가지의 이유들을 쌓고 쌓아 나를 충분히 설득하고 나는 입 밖으로 내놓았다. "나 책을 쓰고 싶어." 내 공표의 첫 대상자는 남편이었고, 그다음은 부모님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네가 무슨 책이야."라는 말 대신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나는 8월에 책을 쓰기 시작했고 12월에 투고를 했고 1월에 계약을 했고 지금은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8월을 돌아보면 그 순간 시작의 버튼은 참으로 작은 것이었다. 그 버튼을 눌렀기에 지금 나는 예비작가가 되었지만, 사실 누르지 않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많은 이유들과 마음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 버튼을 무시할 이유 역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순간의 시작을 선택한 나 자신에게 참 고맙다. 그리고 그 시작을 응원해주었던 모두가 참 고맙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새로운 꿈을 꾼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시작이 서툰 사람이다. 여전히 '자신 있게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보다 '시작을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 시작의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누군가의 시작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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