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K-Queen Model & Creator Contest
8월 25일 아침, 한 단톡 방에 이런 코멘트가 떴다. "정**님 축하합니다." 이 말과 함께 올라온 우먼센스 케이퀸 1차 서류심사 결과 발표 링크. 순간, 정 씨인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앗. 혹시 나인가?????'
'근데 나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나인 줄 어떻게 알았지?'
그렇게 혼자서 당황하며 눈알을 굴리다가 깨달았다. 그 단톡 방에는 케이퀸에 지원한 지원자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는 당연히 합격할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왜 저 멘트 앞에서 나는 그녀를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 왜 그게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훅 들었을까.
어쩌면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소심한 탓에 지원을 해두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었지만. 나는 합격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저 무의식은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몇 주 전, 케이퀸 지원 기간에 SNS에서 여러 영상을 만났다. 나의 SNS 친구들이 케이퀸에 지원하면서 던진 출사표였다. 이게 무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모델 & 크리에이터 콘테스트라고 정의되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저 단톡 방에서도 여러 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내게도 권하는 말이 슬쩍 나왔다. 그때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제가 지원할 자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랬다. 내가 거기에 지원을 하기에는 지난 기수 케이퀸들이 너무 빛나 보였다. 도전하고 시작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였지만, 이건 노력과는 좀 다른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쏘냐 님, 케이퀸 그거 지원해봐요. 충분히 지원할 자격이 있는 것 같아요. 한번 해봐요. 이러저러해서 저는 쏘냐 님이 지원해봤으면 좋겠어요." 강력히 권하는 통에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고 "아하하하, 그래요????"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케이퀸 서류접수 마지막 날,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지원서라도 한번 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내 무의식은 벌써부터 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서류접수 마지막 날 따위는 왜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들어가 보니 마감 시간은 10시였고, 그때 시간 9시 30분경. 지원서 문항들을 읽어 내려갔다. 많은 이들이 만들어 올렸던 영상 제출 항목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것을 발견했다. 영상이 없어도 지원은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지원서를 한 칸 한 칸 채워가기 시작했다.
기대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최선을 다해 그 칸들을 채웠다. 글자 제한 때문에 스토리를 상세히 풀 수 없어 아쉬웠지만. 역시 영상이 없다면 합격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문항을 채우고 지원하기를 누르고, 끝.
'OK. 잘했어. 충분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지원서를 썼으니까. 용기를 내서 지원서를 제출했으니까. 이것으로도 충분히 잘했어. ' 그렇게 나를 향한 칭찬을 보내고, 그대로 잊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 도전은 지원서 그 자체로 충분했으니까. 이것이 단순히 1차 서류 단계라고 하더라도 합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날 단톡 방에서 그 멘트를 발견했던 것이다.
천천히 그 링크를 클릭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그분의 이름부터 찾았다. 거기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단톡 방의 멘트가 지칭한 정**님은 그녀가 맞았다. 그런데 바로 돌아나가지 못하고 좀 더 아래로 스크롤을 내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거기에서. 내 이름을.............
솔직히 말하면 기뻐하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으앗, 뭐지. 왜지? 나 왜 통과했지? 나 어떻게 뽑힌 거지??????' 나는 요즘의 내가 참 좋다. 꽤 멋지다고도 생각한다. 용기를 내고 도전하고 시작하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는 내가 충분히 대견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멋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이 대회는 이름이 말하듯, 모델 (외형적인 조건이 충분한 사람) & 크리에이터 (팔로워 수가 상당히 많은 인플루언서)를 뽑는 자리 아니겠는가? 그 두 가지 모두에서 나는 뛰어나지 않다 여겼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나는 1차 서류심사 합격자의 리스트에 올랐다.
소심한 나였지만 자랑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 리스트의 정** 중의 한 명이 나라고 가만히 밝혔다. 축하를 받다 보니 용기가 조금 생겼다. 이번에는 SNS에 소식을 올렸다. 축하의 말이 잇따랐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쏘냐 님, 잘 될 거예요.", "충분히 자격이 있어요.", "충분히 멋져요."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자존감을 한껏 고양시켜줄 멘트를 타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이 기회를 얻은 것은 내가 그 날 지원서를 제출한 덕분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조금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내 생각보다는 조금 더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행복했다. 이 세상에 내 가족 아닌 이 중에, 나에게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깨달은 것. 나에게 마음을 보내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축하의 인사와 함께 쏟아진 도움의 마음들. 평소 내 스타일을 아는 어떤 분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 날 뭐 입으실 거예요? 저희 슈트 빌려드릴게요." 매일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나에게 이러한 이벤트에 어울릴만한 옷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그럴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며, 딱 어울릴 것 같은 슈트가 있으니 빌려주시겠다고. 이야. 얼마나 감사한지.
문자로 전해진 케이퀸 2차 면접 날짜. 날짜가 확정되자마자 그날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모두 막혀있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그저 푸념처럼 털어놓았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면접이 며칠이에요? 몇 시에 진행되나요?" 그래서 알려드렸더니, 여기저기서 이분 저분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스케줄 좀 확인해 볼게요.", "스케줄 변경이 가능할지 볼게요.", "잠시 면접장 앞에 가서 아이 봐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집에 아이 두고 가시겠어요?"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은 모두 출근을 하는 분들이었다는 것. 그들이 시간을 내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 이렇게 쏟아지는 마음들 앞에서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감사하지만 염치가 없어서 덥석 "좋아요." 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마음속에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같은 동네 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그날 아이 맡길 곳 구했어? 우리 집에 맡기고 가." 이렇게 아이 맡길 곳도 해결이 되었다.
어떻게든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던 그들은 나를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감사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충분한 응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이래서 모든 도전은 의미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면접은 미뤄졌고 아직 어느 날에 면접을 보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다시 정해지는 그 날에는 모든 것이 더 잘 맞아 떨어 지기를 바라본다. 무조건 합격할 거라고 확언을 하면서 자신 있게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위인은 못된다. 그 역시 나니까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저 내가 가진 결을, 내가 가진 스토리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오리라. 그 어느 순간에도 나는 나여야 하니까. 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심사위원분들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동시에 나는 최선을 다할 거다. 많은 분들의 파이팅에 보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용기가 부끄럽지 않도록. 지나고 돌아볼 때 제일 후회스러운 건, 결과가 나빴던 순간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한 순간들이었다. 난 이 도전의 기록을 즐겁게 추억하고 싶다.
누군가는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말할 수 있다, 또 어떤 누군가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이벤트라고 이렇게 장황하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다. 지금까지 내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던 분야로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들과 완전히 다른 도전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벽을 깼기 때문에. 나는 안될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내가 충분히 대견하기 때문에. 나는 이 도전 앞에서 이렇게 장황해졌다. 마치 전쟁에라도 나가듯이.
즐겨보자. 이 순간을. 나의 벽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이 기회를. 도전한 나에게, 기회를 준 그들에게, 충분히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