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그저 생각만 하다가 덮어버리고 말기를 여러 번. 오늘은 그냥 헝클어진 생각들이라도 주제로 삼아 글을 써봐야겠다며 컴퓨터를 켰다.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맥주를 한 캔 땄고, 요즘은 캔 하나가 왜 이렇게 큰지 벌써 약간 알딸딸하다. 이런 때라면 오히려 내 마음을 좀 더 명확히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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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프로젝트 러브체인을 시작하며 기부앱 돌고와 미팅을 하던 날, 돌고의 대표님에게 그런 질문을 했었다. "그러면 돌고의 수익모델은 무엇인가요?" 최대한 수수료나 운영비를 떼지 않는 곳과 협업을 하고 싶었기에 그걸 확인하고자 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 다음에 나에게 똑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그러면 정 작가님의 수익모델은 어찌 되나요? 수익 없이 이런 일을 지속하기 힘드실 텐데요." 그 질문에 순간 멍해졌다.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기부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수익이라는 것을. 그래서 대답했다. "제 수입원은 저희 남편 월급이에요. 이 프로젝트로 제가 수익을 얻을 생각은 없어요."
그랬다. 그저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 말고 다른 무언가. 그저 그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나에겐 충분한 보상이었다.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딱 4개월만,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그저 즐거웠다. 내 머리를 맘껏 쓰고 있는 느낌.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일 뿐인 내가 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했을 때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기부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생각했다. 기부는 수익 사업보다 더 큰 신뢰가 필요한 일. 그래서 무엇보다 탄탄하게 기획해야 했고, 기부 프로세스 역시 투명해야 했다.
기획단계에서 나는 회사에서 쌓은 마케팅 경력, 프로젝트 기획의 경험을 모두 끌어모았다. 그리고 멤버를 모을 때 나의 경력을 명기했다. 그것이 이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을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투명한 기부 프로세스를 위해 '기부앱 돌고'라는 협업자를 찾았다. 혼자서는 그만큼의 완성도를 가져가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은 마케터였던 나의 과거 경험들이 도와주었다.
그런데 막상 기부 프로젝트를 대중에게 오픈하려고 하니 이게 단순 마케팅으로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마케터였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마케터라는 이름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저 나의 지나친 걱정일 뿐이라며 무시하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뒷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마케터였고, 곧 출간을 앞둔 작가였고, 기부 프로젝트의 리더였다. 그 세 가지를 엮으니 요상한 조합이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는 말이다.
흐음. 아무것도 아니었던 어떤 사람이 기획한 프로젝트. 무언가를 기대하기엔 내가 너무 작았고, 그저 기부 연대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했었다. 두 명만 모여도 연대니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짜내어 공표한 프로젝트였다. 최선을 다해 기획했고 틀을 갖추었고 실행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었다. 그 안에 내 사익 따위 끼워 넣을 틈도 없었다.
사실 그러한 뒷말 따위 아무렇지 않았다. 뭐 사실 아무렇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인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마음은 들었다. 하지만 큰 이슈는 아니었다. 그보다 진정성을 봐주는 이들이 더 많았기에.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실망할 틈 없이 제대로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그런데 나에게 현타는 엉뚱한 곳에서 왔다. 요 며칠 당연한 듯이 집안일에 몰두하는 동안 말이다. 바쁘던 나의 프로젝트들에서 손을 떼고 집안일에 몰두하는 동안 집은 아주 말끔해졌다. 퇴근하고 들어와 설거지거리 없는 저녁을 마주한 남편에게서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하필 그날 우리 부부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도 딱 이 타이밍에 그의 입에서 나왔다. 육아와 집안일에 쓰는 시간을 이만큼은 남겨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했다. 책 출간에, 기부 프로젝트 리더에, 글쓰기 프로젝트 리더에, 독서모임에, 마케팅 스터디까지..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할 때 그는 나를 응원했다. 돈이 되지 않을 일이지만 시작해도 되냐고 기부프로젝트 계획을 밝혔을 때도, 내 초기 인세를 기부한다고 했을 때도, 늘 흔쾌히 응원했던 남편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 새로운 일들을 늘려가고 있었고, 그것들을 정리해야 하지 않냐는 것이 남편의 뜻이었을테지. 내가 다양한 일들을 놓지 못하는건 그것들이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하고 발견하는 과정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생각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아이와 엄마의 시간이라는 커다란 것을 희생하는 일이니까.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조금 떨어뜨려둔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원래부터 돈을 번 적이 없으니까 그 시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란 무엇보다 큰 가치이니까.
지금은 코로나 시국, 아이를 24시간 케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것과 상관없는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취미활동'에 불과하다는 자각. 아이를 맡기는 대신 내가 직장을 포기했으니,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무언가를 '돈'과 상관없이 하겠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느낀다.
한 번도 무엇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다 욕심을 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주 5일 돈을 벌 수 있는 직장도 내려놨었다. 아이들을 남에게 맡기는 대신 내가 케어할 수 있다면 다 상관없다 여겼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하면서도 다른 욕심은 내지 않았다. 아이들을 내가 직접 케어하면서도 나의 쓸모를 느낄 수 있는 일. 그거면 충분하다 여겼다.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처럼 주 5일 나가있을 수 없다. 당연히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장을 가질 수 없다. 육아를 위해 남편과 내가 합의한 사항이다. 그러니 그대신 아이들과 있으면서 내가 하고싶은 무언가를 하는 것 정도는 괜찮은 일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앞에서, 왠지 무력해지고 슬퍼지는 건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아서일까. 얼마 전 나에게 딱 맞는 잡 오픈 공지를 봤다. 하지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 대신 나는 안 된다고 삼키고 말았던 건 엄마와 하고싶은 일 사이, 그 병행을 원했기 때문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확실한 직장을 가지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었나 생각이 많아진다.
이래저래 머릿속이 복잡한 요즘이다. 즐기지도 않는 맥주가 맛있게 느껴지고, 한 캔도 못 마시는 내가 지금 두 캔째 마시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꽤나 어지럽고 복잡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