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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내가 몰라서...

불안이라는 악당

by 쏘냐 정

어제 그저 흔들리는 마음으로 글을 하나 썼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흔들리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흔들렸다. 그래서 마신 맥주 한 캔. 마시다 보니 그저 헝클어진 생각들을 쏟아내 보면 답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센티한 상태로 썼던 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쓴 글을 다시 열어봤던 건 아무래도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역시 그 생각이 맞았다. 수정, 또 수정. 그러다가 그냥 삭제해버릴까 고민도 했다. 결국 그대로 두기로 한 건 그 글을 지워버리고 나면 그 순간 혼란스럽던 나 역시 잊게 될까 봐였다. 그저 그대로. 그 자리에 두었다.


그래도 글로 쏟아낸 효과는 있었다. 내 흔들림의 정체가 단지 남편이 던진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로 써놓고 읽다 보니 이상했다. 거기엔 핵심이 없었다. 나의 감정이 엉뚱한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진짜 핵심은 요 며칠 나를 잠식한 불안이라는 악당, 그것이었다. 드디어 악당의 정체를 알아차렸는데 또다시 앞이 깜깜해졌다. 그 불안의 실체가 그저 흐릿했다. 또렷해지지가 않았다.


사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먼저 생각한 쪽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남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멈추면 도태될 것 같아서. 계속 달려야 할 것만 같았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 생각하면서도 무엇 하나만 선택할 수가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무언가를 놓는 것이 불안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은 무리라고.


그런 양가감정에 갈팡질팡하던 내게 던져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 아팠다. '알아. 아는데. 나도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른 것을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할 일이 확실한 남편이 부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주 5일 출근하는 직장인인 남편이. 회사에 가서 일에 집중하다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일과 분리되는 그 일상이. 그런 당신이 나의 불안함을 이해할 수 있냐고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거라면 그냥 하면 돼. 그게 돈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언제나 고마운 남편. 그런 남편이기에 무언가를 놓으라는 말 한마디에 배신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적어보니 좀 더 명확한 기분이 든다. 그래. 역시 원인은 나의 불안이었다. 나의 자격지심이었다.


나에겐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명백히 나의 "일"인 몇 가지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소강기를 맞았다. 덕분에 그저 엄마이기만 하던 때처럼 아이들과 손잡고 눈 맞출 시간이 늘었다. 집안일도 조금 더 열심히 했다. 이 대목에서 나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이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잔잔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이란.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머무르지 못하는가. 왜 나는 자꾸 다른 내 "일"이 하고 싶은가. 심지어 그것이 돈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결국 빙빙 돌기만 하고 결론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의 불안을 '알아차림'에 성공했으니 이제 내 마음을 좀 더 깊이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가 문득 책장에 꽂아둔 책이 생각났다. 전승환 작가의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모를 때" 어쩌면 제목이 이렇게 찰떡같을까. 제목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이 인문 베스트셀러 1위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마음을 몰라 헤매는 나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많기 때문일 테니까. 내가 특별히 어리석어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


그렇게 펼친 책 속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문장들을 만났다. "지금의 행복이 깨져버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의 빈틈을, 불안은 절묘하게 파고듭니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보이지 않는 벽 앞에 서 있는 듯한 막연한 기분, 그것이 바로 불안의 정체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모를 때, p21) 그랬다. 내가 손에 잡히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원래부터 불안은 그런 모습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가진 것과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말라고, 미래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모를 때, p21) 사회 곳곳에서 하는 채찍질에 불안해져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묻지 못하는 것. 그것이 불안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초조해하며 그저 어딘가로 더 달려야 하는지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어야 했다. 진짜 원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나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테니까.


mi-pham-FtZL0r4DZYk-unsplash.jpg Photo by MI PHAM on Unsplash


미래의 내가 무엇에서 행복을 얻을지 알 수 없다. 지금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다만 순간순간 행복한 일들을 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미래의 어느 날 돌아볼 때, 지나온 시간들이 행복으로 채워져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다시 물어야겠다. 내 마음에게. 원하는 것이 무어냐고. 너는 어떤 속도로 가고 싶냐고. 네가 꿈꾸는 행복은 어떤 모습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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