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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그렇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by 쏘냐 정

참 오랜만의 상장이었다. 그날 아침 조회시간, 나는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았다. 교내 백일장, 시 부분 1등. 중학교 2학년 소녀는, 그렇게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때는 상을 많이 받았다. 내가 잘나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초등학교가 상을 남발하기 때문이라는 걸. 중학생이 되고 보니 시상 자체가 줄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받는 상장도 없어졌다. 그러던 날 중에 받은 이 한 장의 상장은 내게 너무 큰 기쁨이었다.


그 전에는 글을 쓰는 것이 칭찬거리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시라니. 내가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매년 연례행사로 여는 백일장이었고, 우리는 모두 한편씩 작품을 내야 했고, 그래서 그냥 썼던 글이 1등 상을 받았다.


'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건가?' 단순한 14살 소녀는 100편의 시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에게 약속도 받아뒀다. 100편의 시를 채우고 나면 책을 만들어주기로. 내 책을 가지겠다는 꿈 역시 그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 100편을 채운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라는 것이 마음먹는다고 뚝딱 쓰여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시를 쓰는 건 내 감정들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나의 생각을 깊이 읽어야 주제를 정할 수 있었고, 더 깊이 대화해야 한 줄이 나왔다. 시 덕분에 나는 나와 대화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썼던 시의 제목은 "이 길의 끝엔"이었다. 덜 중요한 것에서 시작해서 더 중요한 것으로 끝나는 점층법을 사용한 시. 제일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 길의 끝에/ 진실한 우정이 있다면/ 한 마리의 파랑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겠습니다." 그날 이 시가 아름답게 쓰였던 이유는, 나에게 우정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고민 때문에 당시의 나는 아팠었고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그것이 이 시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첫 시는 백일장 때문에 썼지만, 이후의 시들은 내 마음이 부대낄 때 나를 달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세상에 답을 묻지 못했던 소녀는, 자신과 대화하면서 그걸 시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타인의 눈에, 어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닐 고민들. 하지만 10대 소녀에게는 절실했던 이야기들. 뿌연 안개가 내린 미로 속을 헤매듯 때로는 답답했고 때로는 두려웠던 주제들에 대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리고 파란 하늘에 대한 동경이, 이유 없는 막막함들이 시에 담겼다.


Photo by Thought Catalog on Unsplash


등단한 시인을 만나 시를 보여보기도 했다. 신춘문예에 도전을 해보라는 말에 응모를 해보기도 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그 도전만으로도 충분했다. 원래 글을 쓰는 일이란 한 번에 인정받기 어려운 일 아닌가.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도전할 가치도 없겠지. 내가 어른이 되면, 그래서 생각이 더 깊어지면. 그때 또 도전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고, 가장 답답하던 고3 시절도 시를 쓰며 이겨냈다. 그렇게 써 내려간 시가 95개. 이제 5개만 더 쓰면 100개를 채울 수 있다. 곧 대학생이 될 테고, 내 시야는 더 넓어질 테고, 내 생각은 더 깊어지겠지. 5개는 금방 채울 수 있을 거야.


대학생이 된 지 1년. 그 겨울에 나는 깨달았다. 1년 동안 내가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못했다는 것을. 다시 노트를 펴고 연필을 사각거리다가 나는 다시 깨달았다. 시를 쓰던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내가 있는 곳이 미로 같아서, 운신의 폭이 좁아서, 시에게 모든 것을 묻던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이제는 시를 쓰는 길이 미로가 되어버렸다. 넓은 세상의 번잡함은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게 했다. 그 대화를 그대로 종이에 옮겨놓는 순수함을 앗아가 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시 쓰기를 포기했다. 어떻게든 5개만 더 쓰면 손에 쥘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내 시집의 꿈도 흘려보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애정이 넘치지만 내가 잘 해낼 수는 없기에 포기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시를 쓰는 일이 그 첫 번째 포기였다.


시를 쓰지 못하는 마음은 나로 하여금 계속 다른 종류의 글을 쓰게 했다. 비록 시는 쓰지 못하지만 글은 써야 했다. 글이 주는 즐거움을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을 그때의 내 시에 찬사를 보내준 모든 이에게 감사를 보낸다. 덕분에 나는 사춘기 시절 물을 곳 없을 때마다 나와 대화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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