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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를 발견하다

우연히 마주친 나의 일기 속에서...

by 쏘냐 정

첫 아이가 28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오랜만에 펼친 다이어리에서 만난 일기가 쓰인 날짜. 2016년 1월 7일. 매년 빠뜨리지 않고 다이어리를 산다. 기록을 사랑한다. 사실 온라인 생활이 시작되고부터는 온라인 기록이 더 많아졌지만, 종종 종이 위에 사각거리고 싶은 날이 있다.


온라인 생활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나의 기록이 공유됨을 전제하고 글을 썼다. 공유를 통해 소통을 만들었고, 소중한 인연들도 만났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저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어 지는 날이 있다. 이 일기를 쓰던 그날도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일기 안에 내가 그렇게 '기록'해 놓았기에 '기억'할 수 있었다. 기록에는 유용한 '힘'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어 이 일기를 썼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공유하지 않음이 주는 자유로움. 그게 필요했었던 날을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을 글이라 솔직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지 않을 거라고 여겨 아무렇게나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5년 후의 나는, 그때의 나를 공유해보기로 마음먹었다.


[2016. 1. 7 목요일]


'육아일기를 써야지 하고 다이어리를 샀던 게 2년 전. 그때 잠시 쓰다가 접어뒀던 다이어리를 다시 편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어서. 갑자기 진정한 아빠 껌딱지가 되어버린 축복이 덕에 생긴 밤 시간의 자유. 이 시간을 알차게 잘 즐겨야지.


"행복은 상대적이다."


뭐랄까.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먹기에 달린 것. 이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물론 객관적으로 행복하기 쉬운 조건은 분명 존재한다. 객관적으로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무엇인가를 많이 가진 사람. 흔히들 말하는 성공한 사람. 하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지 않다는 것.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지만 행복한 사람 역시 많다는 것도 동일한 맥락의 아이러니.


나는 누가 봐도 넉넉히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런 나로서는 행복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참 다행한 일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난 행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나는 그 증거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다. 많이 가지지도, 적게 가지지도 않은 그 어중간함. 결국 나의 행복은 내 마음이 결정한다.


그렇다면 불만족 대신 만족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행복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런데 여기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만족이란 것이 안주와 아주 쉽게 연결이 된다는 것.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다 보면 시작되는 것이 불만족, 그다음은 자기반성. 그게 긍정적으로 발전하면 자기 발전의 기회가 된다. 그런데 반대로 움직이면 스트레스가 되고 행복하지 못함의 시작이 된다. 만나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굴레.


이쯤 되면 여기에서 제일 큰 문제는 생각이 많은 나 자신이다 싶다. 근데 또 답을 찾아보고 싶은걸 어쩌란 말인가.


후회와 반성을 다른 거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문제를 풀어볼 수 있을까. 사실 그런 거다. 어떤 생각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 지을 것인가의 문제. 생산적인 마무리로 이어가는 것. 음.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


이 날의 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엄마로 사는 것이 행복하면서도 불만족스러웠던 혼란스러움을 어딘가에 풀고 싶었던 것 같다. 원론적이고 추상적으로 끄적여댄 이 일기는 이틀 후 다시 이어진다. 어딘가 빈 듯 싶은 그 틈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고민은 당연스레 인정받으며 일하던 시절로 옮아갔다.


[2016. 1. 18 토요일]


Passion. 이 다이어리를 펼칠 때마다 마음에 담게 되는 단어. 열정, 그리고 노력. 그 두 가지가 없다면 삶은 텅 비어버리고 만다. 열심히 사는 만큼 내가 채워진다는 건 정말이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어떻게 더 열심히 살아볼까.


생각해보면 나는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가정주부, 육아맘으로서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이 삶에는 인정받을만한 무엇인가를 할 기회가 너무 없다. 가장 큰 인정이란 아이들이 엄마를 사랑해주는 것. 그리고 바르게 잘 커주는 것. 그것이지만... 그것으로 나를 평가하는 게 온당할까. 그래서 자꾸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지는가 보다 싶다. 나 스스로라도 나를 인정해 줄 그 무엇인가가 필요해서.


가끔 나를 누군가에게 보이기가, 나를 소개하기가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 꽤나 자주 느끼는 기분이다. 그래. 역시 그냥 가정주부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이상이고 싶은 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20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특히 삼성에서 보낸 7년가량의 시간. 나를 무한정으로 소비해댔던 시절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를 많이 발전시켰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난 당당했고, 무엇보다 희망을 보는 아이였다.


나의 첫 부서. 하필이면 지금 막 생긴 신규 부서였다. 부서 역할부터 셋업해야 하는 시기. 여러모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부서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결과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고 나면 폐기될지도 모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일들 때문에 하는 야근이 매일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과장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그런 상황에 던져진 사원에 대한 걱정이 그 면담의 주요 이슈였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있기에 암담하고 힘들지는 않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이 창대한 결과를 불러올 그 무언가의 시작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믿는다고. 지금 이 시점,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이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사실 그때 나는 신입이었고,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그렇게 시작되는 일들 중 어떤 것들은 매우 쉽게 폐기되기도 한다는 걸 알지 못하는 풋내기였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확신했다.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21년의 내가 덧붙임. 지금의 나 역시 그때 나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시장은 분명히 그 방향으로 흘러왔으니까.)


그 날 과장님에게 이런 부탁도 했다. "아직 저는 사원 나부랭이에 불과해서 큰 그림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 잘 아는 분들이 가끔씩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큰 그림에 대해서요.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면 일이 덜 힘들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현재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보려 노력했던 사람. 지금의 노력이 분명 결실로 맺어질 거라 믿는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이었던 사람.


그리고 대리가 되었을 땐, 신입이었던 사원 후배들에게 알려주려 노력했었다. 4년의 시간 동안 파악한 아주 조금 더 보이는 그림의 윤곽을. 그저 조금 더 일지라도 전체 맥락을 설명해주려 애썼었다. 그들도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부분만 보면 보잘것없는 일이, 큰 맥락에서 보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면 덜 지칠 거라고.


그때 나는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누군가의 평가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판단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 큰 방향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스스로를 인정해줄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도 그 무언가, 그 방향이 필요하다. 이 배가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이,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다음 일기가 끝을 맺는다. 5년 전의 나는 정말로 무언가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이 치열한 고민의 끝은 그저 엄마로 머무는 거였다. 고민의 끝에 머문 시간은 신기하게도 행복했었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겠다 마음먹었을 때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푸드덕거리기 시작했다.


매 순간에 만족하기 위해 고민했다. 덮어두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다 보면 지금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길을 마주했을 때 열린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건 어떤 결정 앞에서도 행복을 찾는 건 내 몫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다시 결정의 앞에 섰다. 또다시 도전의 앞이다. 10년 전의 나를, 5년 전의 나를, 1년 전의 나를. 가만히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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