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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화는 출간 계약에서 시작되었다.

책을 쓰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변했다.

by 쏘냐 정

2019년 여름,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책 한 권쯤 나온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했다. 그래. 나 역시 책이 나온다고 해서 내 삶이 바뀔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쓰고 싶었다. 이 세상에 내 머리를 써서 만들어낸 어떤 결과물 하나 내어놓고 싶었다. 내가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랬다. 내가 원한 것은 변화가 아니라 평화로운 삶의 지속이었다.


그래도 당시 나로서는 큰 결심을 한 셈이니.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도전을 하는 것이니. 이 도전이 좋은 결과를 맺는다면, 작은 변화 정도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변화의 시작은 좀 더 일찍, 예상치 않은 타이밍에 시작되었다.




출간 계약,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Photo by Scott Graham on Unsplash


이렇게 말하면 '뭐야, 그럼 결국 출간으로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간과 출간 계약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출간은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물리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 출간 계약은 출판사와 저자의 합의. 출간 계약서라는 종이에 서명을 하는 절차를 말한다. 출간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물리적 변화지만, 출간 계약은 그 뛰어듬을 준비하는 단계.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혹시라도 내가 시작한 책 쓰기의 과정이 나에게 변화를 준다면, 그것은 그 책이 세상에 나온 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출간 계약과 동시에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화로이 굳게 유지되던 자리가 흔들리면서 자꾸 다른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눈 앞에, 어쩌면 그간 외면해왔을지 모를 많은 것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 시작은 계약을 위해 만난 출판사 대표님의 한 마디였다. "마케팅은 작가님도 같이 하셔야 해요." 너무나 현실적인 이 한 마디.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아무 욕심도 없었다는 내 말은 100% 진심이다. 오히려 무언가 변화가 생길까 봐 그게 무서울 정도였다. 그대로 평화롭고 싶었다. 엄마로 살아온 그 날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내 소망은 단지 이것 하나. '책이 세상에 나오기만 하면 좋겠다.' 나의 시간을 오롯이 희생시켜가며 써 내려간 과정. 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은 내 책을 출간해 줄 출판사를 만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출간 계약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대표님은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했다. "출판사는 출판사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대할 거예요. 그런데 요즘 출판사만 마케팅을 해서는 책을 팔 수가 없어요. 작가님도 마케팅을 하셔야 합니다. 원래 마케팅을 하셨으니 잘 아실 거예요." 그리고 난, 이 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


첫 번째 이유는, 출판사 대표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 사실 책을 쓰고 투고를 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투고의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단 한 번의 투고로 성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 첫 번째 투고에서 받았던 출간제의. 기뻤지만 그대로 계약을 하기에는 꺼림칙한 면이 있었다. 조건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책만 나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렇다면 조건은 어떻든 상관없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조건이라는 것은 조금 다르다.


연락을 준 출판사 담당자분 (대표님)의 태도. 내 원고에 대한 확신의 정도. 그것이 내가 생각한 조건이었다. 투고에 성공하여 내 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를 만나는 것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이 원고가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 그렇기에 투고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나만의 테스트에는 통과 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원했던 일. 그것은 세상에 가치 있는 결과물을 내어놓는 일이었으니까.


만약 세상에 나올 가치가 없는 원고라면 굳이 돈과 시간을 쓸 이유가 없다. 이 지구가 내어놓는 에너지를 써가면서 (책을 만드는데 드는 종이와 잉크와 기계장비와 전기들과....... 등등등) 책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첫 투고에서 받은 제안에 응할 수 없었던 건, 그 제안에서 확신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어쩌면 이 원고는 세상에 나올만한 가치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러한 자각은 '이대로 이 원고를 덮어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쉽게 덮어버리기에는 이미 너무 커져버렸던 마음. 덮어버린다 해도 그 이유는 확실해야 했기에, 그래야 내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두 번째 투고를 준비했다. 출간 기획서를 다듬어 다시 보낸 투고 메일.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첫 연락이 왔다. 나의 첫 책을 출간한 바로 그 출판사 대표님으로부터의 전화.


일단 출판사임을 밝히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원고 투고하시고 출간 제안 많이 받으셨지요. 이 원고 보자마자 꼭 책으로 만들어서 많은 엄마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시면 이러이러한 것들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15분이 넘게 이어지는 대표님의 설명. 전화기가 뜨거워지도록 통화를 하고 내려놓으면서 감사로 벅찬 마음을 느꼈다. 책으로 꼭 만들어 많은 이들이 읽도록 해주고 싶다니. 이 원고가 가치 있다고 인정받은 느낌. 이제 출간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오래 고민하지 않고 이 출판사와의 출간을 결정한 이유였다.


이렇게 내 손을 잡아준 출판사였다. 이미 초안을 다 쓰고 1차 퇴고까지 마친 상태로 한 투고였기에 이제 원고를 넘기기만 하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나간 출간 계약 자리였다. 사실 이 계약 이후 내가 금전적으로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 선인세로 계약금도 받기로 되어 있었다. 혹시 추가 판매가 없어 인세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내 목표는 이룬 것.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출판사 입장은 다르다. 내 원고를 선택했을 때, 내 손을 잡아주었을 때, 출판사는 이 책에 금전적인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책을 만드는데 비용을 들어갈 것이다. 만약 그 책이 팔리지 않는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손해가 되겠지. 물론, 출판사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 따져보고 선택했을 테고 선택에 대한 결과도 그들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내가 쓴 원고, 내 이름이 박힌 내 책 아니던가.


내 마음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적어도 손익분기는 넘을 수 있게 내가 노력해야겠다. 잘 되어서 이 책이 출판사에 이익이 되면 더 좋겠다.' 쉽지 않은 목표였지만, 사실 그 생각의 시작은 이렇게 단순했다. 그저 이렇게 결심했던 것뿐이었다. 일단 이 책이 나오는 그 순간까지만이라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내 욕심. 그랬다. 솔직히 스멀스멀 올라온 내 욕심. 책을 쓰는 동안은 오히려 깔끔한 마음이었다. 결과물에만 집중했다.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첫 투고를 하고 한 달을 기다리면서, 뜨뜻미지근한 출간 제안을 받으면서, 마음이 그냥 괜찮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가 탈수록, 욕심은 더 커져갔다. 그 마지막 순간, 출간 계약의 그 순간. 내 욕심은 빼꼼히 머리를 내밀만큼 자라 있었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꼭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욕심.


마지막 이유는, "마케터니까 잘 아실 거예요." 하고 덧붙였던 대표님의 말. '마케터니까'라는 말이 숨어있던 나를 깨워놓았다. 마케터니까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을 뿐. 그때처럼 움직이고 싶어 졌다. 생생히 움직이던 그때의 내가 내 기억 속에서 소환되었다.



출간만 하게 되면, 이기적 이게도 그냥 도망가버리고 싶었던 마음. 내 책이지만 출판사가 알아서 해줄 거라 믿으며 숨고 싶었던 마음. 그다음엔 어찌 되든 평화롭게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결국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변화는 알지도 못하고, 발끝을 살짝 내밀고 말았다. 흔들리며 조금씩 넓어진 그 시야 속으로. 슬쩍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그 길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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