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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작이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모든 시작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by 쏘냐 정

시작. 지난 1년. 반복하고 반복했던 말. 그리고 반복하고 반복했던 일. 도전하기. 시작하기. 거기엔 작은 시작도 있었고, 조금 더 큰 시작도 있었다. 지난 몇 년을 어떻게 엄마로만 살았을까 싶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작했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의 나는, 2019년에 내가 책을 쓰고야 말 거라는 걸 몰랐었다. 2020년의 내가 그렇게 다양한 시작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러한 시작들이 쌓여 결국엔 어느 회사의 창립멤버가 되겠다는 말을 꺼내게 될 줄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엄마로만 살고 싶다던 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초였다. 그때 움직임의 이유는 계속 엄마로 살기 위함. 그래서 하기 시작한 것이 책 쓰기. 육아서를 써냈다. 내 책상 하나 없이 그저 아이들이 없는 시간 식탁에 앉아 글을 쓰던 시절. 그렇게 쓴 원고로 출간 계약을 하고 나니 시간에 쫓기는 날들이 생겼다. 그런 날엔 거실에 아이들이 노는 동안 안방 침대 위에 은물상을 펴곤 했다. 잠시 안방 문을 닫고 거기에서 노트북을 켰다.


그저 잠시일 줄 알았다. 그런 내 작업의 시간은. 그런데 시간은 흘렀고 많은 시작들이 있었고. 결국은 대대적인 정리를 단행하고 안방 침대 옆에 책상을 들였다. 사용하던 노트북이 자꾸 버벅거려서 데스크톱도 하나 샀다. 나만의 공간. 아들 둘이 어지르는 집안에 꽃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꽃은 외면하기만 했는데, 이제 꽃을 올려둘 공간도 생겼다.


정말이지 2년 사이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저 엄마로 사는 게 행복하다던 내가, 이렇게 엄마로 쭉 살겠다고 말하던 내가, 왜 일을 꼭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던 내가. 창업팀과 함께할 결심을 하게 되다니.


그 결심의 중심에 언젠가 브런치에 썼던 아래 글의 주인공인 친구가 있다.

https://brunch.co.kr/@jsrsoda/43


이 글을 썼던 그 만남 이후 또 한동안 각자의 삶을 살다가 오랜만에 만났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미래가 아닌 각자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나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친구를 응원했었다. "요즘은 정부 지원사업도 많대. 한번 도전해 봐." 이런 조언도 했었더랬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 사업 아이템이 좀 구체화됐어. 이번 주에 우리 한번 만나자." 그 자리에서 바로 "OK" 했고 이틀 뒤로 약속을 잡았다. 언제나 응원하고 싶은 친구였기에, 혹시라도 나의 피드백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필요한 거라면 그건 내가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내심 이 친구에게 나의 꿈을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첫 직장 첫 부서에서 입사동기로 만났던 친구. 부서 내 파트는 달랐지만 데칼코마니처럼 각 파트에서 맡은 일이 비슷했다. 친구는 그 파트의 중요 지역인 미국 다음인 중남미를 맡았고, 나는 내 파트의 중요 지역인 유럽 다음인 CIS를 맡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친구는 미국을, 나는 유럽을 담당하게 되었다. 시작이 비슷했고 하는 일이 비슷해서였을까 꿀 수 있는 꿈도 비슷했더랬다.


그중 하나였던 MBA에 합격한 친구가 떠나던 날. 회의실에 앉아서 그런 농담을 했다. "너는 공부를 하러 떠나니까 난 그 사이에 결혼을 꼭 이루어볼게." 당시 우리에겐 결혼이 MBA에 견주는 관심사였기에. 그냥 웃으며 했던 농담이었다. 사실 공부하면서 결혼할 수도 있는 일이고, 결혼하고서도 공부는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리고 정말로 친구가 한국에 돌아오기 몇 달 전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나는 엄마가 되었고 회사를 그만뒀다. 친구는 MBA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고 미국 주재원까지 하며 일을 해나갔다. 나의 자리는 엄마라면 친구의 자리는 원하는 일로 꿈을 이뤄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반전은 그 약속의 날 일어났다. 우리가 다시 유쾌하게 웃으며 만난 그 날, 친구가 손을 내밀었다. "나 이러이러한 걸 하고 싶어. 그리고 이걸 하려면 함께 할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해. 내가 처음으로 손 내밀고 싶은 사람이 '너'야."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나는 이런 건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의 계획은 그저 그녀의 시작을 있는 힘껏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해버렸다. "좋아." 그렇게. 갑자기. 어찌 보면 조금 뜬금없이. 나는 그녀의 창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함께 시작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열정이 나를 매료시켰다. 듣다 보니 나의 열정도 솟아올랐다. 게다가 내가 하고 싶은 바로 그 일이었다. 친구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당연히 그 시작은 설렘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두렵기 시작했다. 2년 전쯤 시작된 마음의 움직임이 지난 1년 동안 실체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시작들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시작이란 두려운 일. 단 한 번도 시작이 두렵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 두렵지만 그냥 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을 뿐.


'괜찮아. 실패해도 돼. 도전만으로도 성공인 거야. 혹시 실패한다고 해도 누가 손해 보진 않아.' 그랬다. 내 도전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내가 얻는 것은 시도했다는 사실 그 자체. 그런데 이번 시작은 좀 다르다. 지금까지는 혼자의 시작이었다면, 이 시작은 처음부터 팀으로 시작하는 일. 내가 잘못하면 이 팀에게 피해가 간다. 분명 다가올 시행착오, 우여곡절. 하나씩 상상할 때마다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일이 엄마가 되고서 처음 접하는 full time job이라는 점이었다. 내 가족들도 덩달아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 특히 아이들은 일하느라 낮에 없는 엄마를 처음 만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일은 소중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 그건 일의 소중함과는 별개의 일.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곧 엄마가 없는 낮을 맞이할 거란 사실을 알게 된 9살 첫째는 이야기했다. "나는 엄마가 일 안 하고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대견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축복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엄마도 이해해. 그런데 지금 엄마는 꼭 이 일이 하고 싶어. 축복이가 태어나기 전엔 엄마도 회사를 다녔거든. 축복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선택했었어. 그래서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잖아. 그런데 이제는 엄마도 일을 하고 싶어 졌어. 이번엔 축복이가 엄마를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엄마 껌딱지인 5살 둘째는 좀 더 격렬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저녁 시간엔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에 낮엔 유치원에서 잘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아이들이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막상 맞닥뜨리면 눈물 글썽이는 날도 분명 많을 테지. 그 시간들을 함께 받아들이는 과정이 상처가 아닌 성장이 되도록. 노력의 시간들도 분명 필요할 게다.


이 많은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이곳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만큼 나는 하고 싶었나 보다.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가득 차오르는 내 마음에게는 이 한마디를 한번 더 건네야 할 것 같다.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 혹시 결과가 예상에 미치지 못한대도 괜찮아. 큰일 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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