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의 시작, 그리고 아이의 등원 금지
아이를 낳고 퇴사를 한 것이 2014년이었다. 그리고 2021년 6월, 나는 7년 만에 다시 한번 조직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창업을 결심한 친구의 새 여정에의 동참. 예전에 다니던 대기업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결심이었다. 신중히 업무 시작일을 정했고, 그날이 다가왔다. 두 달 전부터 예고된 날이니 그저 계획대로 시작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바로 둘째의 등원 금지령.
지난 2월 진도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모두에게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여행. 여행지를 떠나기도 전에 우리는 다음 진도 여행을 계획했고 바로 숙소를 예약했다.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될 줄 전혀 몰랐던 그때 예약한 그 날짜가 하필 5월 마지막 4일이었다.
그 사이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6월 1일을 업무 시작일로 잡았다. 별생각 없이 5월 마지막 날까지 즐거운 여행을 하고 6월 1일에 산뜻하게 업무를 시작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행을 위한 유치원 결석 통보에서 시작되었다. 여행으로 인해 아이가 등원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여행 후 3일간은 유치원 등원을 하지 못한다는 공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아, 유치원 안내장에서 그런 문구를 보긴 했었다. 내가 일을 할 계획이 없었을 때는 그저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었기에 무심히 흘려버린 문장이었다. 하필 여행의 끝이 5월 31일. 그리고 그다음 3일은 바로 6월 1,2,3일.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여행을 포기할 순 없었다. 아이들은 한 달 전부터 진도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물었다. 이제 몇 밤 자면 가는 거냐고.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재택근무를 할 예정이니까 할 수 있을 거야. 그전에도 일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었기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일단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의 대표님이 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 전날까지는 통화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통화가 늦어졌다.) 일단 나의 상황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야기를 드더니 친구는 쿨하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일단 첫 주는 우리 여유롭게 가자.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즐겨."
드디어 6월 1일. 예정대로 집에는 나와 둘째가 남았다. 올해 5살인 둘째는 계속해서 "엄마 같이 놀자."를 외쳐댔다. 활동적인걸 좋아해서인지 영상조차 오래 보려고 하지 않는 아이. 대표님이 '여유롭게'라고 말했지만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 나는 외줄 위에 서 있는 양 초조했다. 거실의 아이와 방의 컴퓨터 사이에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다 결국 그 줄 위에서 내려왔다. 하아. 그래. 여유롭게 가자.
7년 만이었다. 조직의 일원이 되어 꿈꾸던 일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것이.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는 엄마라는 위치에 많은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필 첫날이었다. 기념비적인 첫날이었다. 멋지지는 않더라도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 떨리는 일을 시작할 거라 생각한 그날. 나는 또다시 아이와 둘이 마주 앉았다. 결국 업무 시작이라는 계획은 일주일 뒤로 미루기로 했다.
엄마라는 사람이,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공을 모두 돌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래, 내 처음 선택은 포기였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가능성을 보았다. 거기서 시작된 시도들. 하지만 매번 고비는 닥쳤고, 그 고비고비마다 넘어져야 했다. 그 길에서 다시 맞이하는 시작. 이번에는 더 많이 준비했다 생각했다. 내 마음도 더 많이 단단히 했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필 첫날 생겨버린 변수 앞에 나는 또 휘청거렸다.
이 정도는 워킹맘들에게 수없이 들어온 아주 사소한 변수였다. 예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의 업무를 위해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길 준비도 마쳐두었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방법들이 다 펑크가 나는 경우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다. 그러니 이 역시 예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딱 시작의 날이어서, 그래서 그랬다. 심리적 장벽을 건드린 느낌. 우주가 나의 시작을 방해하는 느낌 같은 거.
알고 있다. 어느 한쪽을 가뿐히 포기해버리면 모든 것이 더 심플해진다는 것을. 퇴사를 결심했던 그때 나는 복잡한 상황을 견디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왜 굳이 지금에 와서 나는 두 개를 다 쥐어보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걸까. 일을 시작하겠다고 말하면서, 왜 나는 엄마의 역할 역시 놓지 않겠다 말하는 걸까. 종종 생각하곤 했다.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다른 무엇이 아닌 나에게 생겨버린 그 "모성애"라고. 그런데 그 "모성애"라는 것을 얻고도 나는 일을 하는 나에게서 생동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는 사실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를 다 원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를 다 원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고민 속에서 흔들릴 때 고마운 친구는 또 한 번 제안을 했다. 7년 만의 풀타임 잡에 들떠있던 나에게 그녀가 건넨 제안은 하루 네 시간 근무. 그래. 우리는 모두 1이다. 그런데 이 1이 온전한 1과 또 다른 온전한 1을 합해 2를 모두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씩 양보해야만 하는 이 현실을. 그 어느 쪽에서도 완전할 수 없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자.
그렇게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다. 풀타임 대신 파트타임 정직원으로. 시간은 줄이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 조금 줄어들겠지만 아이들이 적응에 무리 없는 수준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당장은 가벼이 떠다니는 수증기 수준으로만 일단. 그게 팀의 부담도 줄이는 방법이었다. 처음부터 서로 인정하고 준비하는 거다. 내가 풀타임을 채울 수 없음을. 팀은 그렇게 가정과 일의 양립을 꿈꾸는 워킹맘과 함께할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넘치게 감사한 대목이다. 이런 팀과 시작할 수 있음이.
수많은 워킹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는 그 길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있으니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대는 내려놓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훌륭히 잘 해내고 있지만 나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대신 나의 방식으로 나의 기준대로, 그렇게 나아가 볼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