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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Aug 08. 2022

엽서속에서 엽서 쓰기

아베이루(Aveiro)

 포르투갈어로 몰리수(Moliço)는 수초의 일종이다. 한때 천연비료로 쓰이던 이것을 옮기던 배를 몰리세이루(Moliceiro)라고 하는데 몰리세이루는 수초를 잊고 이제 베니스의 그것처럼 그저 관광상품이 된 지 오래다. 형형색색의 몰리세이루가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운하 위로 유유히 떠다니는 곳, 이곳은 아베이루(Aveiro)다. 그런데 당신이 아베이루에 온다면 당신은 아마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래전, 오래도록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예쁜 엽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엽서에는 잠언같아 보이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음을 기억한다.


 몰리수는 사라졌지만, 몰리세이루는 남았다


 당시에 나는 그 글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물음표만 엽서 위로 떠올랐을 뿐이다. 잠언같은 그 글귀가 쓰인 뒷면에는 운하를 떠다니는 컬러풀한 몰리세이루와 노를 젓는 사공의 여유로운 눈빛이 박혀 있었다. 글귀의 의미는 멀었지만, 사진은 먼 아시아에 사는 청년의 마음에도 가까워 보였는데, 그때 이후로 나는 언젠가 아베이루를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가락으로는 세어지지 않는, 오래 해전 이야기다.

흐린 날씨에도 몰리세이루의 화려함은 흐려지지 않았다


 상투적 표현으로 포르투갈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곳, 아베이루는, 현지인 친구에 따르면 베니스가 이탈리아의 아베이루라고 불려야할만큼, 멋진 곳이라고 했다. 리스본이나 포르투에 비해서는 아주 알려지지 않은 도시이긴 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나름의 훌륭한 대접을 받는 곳이 아베이루라고도 했다. 포르투갈에 도착한 이후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가장 먼저 방문한 도시, 아베이루에서 나는 오래전 지인이 그랬던 것처럼 운하 옆에 앉아 누군가에게 엽서를 쓰고 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행의 시작 즈음에 엽서를 보내는 것은 나의 종교적 습관과도 같다. 엽서의 뒷면으로는 그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몰리세이루를 모는 사공이 운하 위를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다. 문득 엽서 밖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미치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기증마저 든다. 이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초감각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시간은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처럼 영원한 느낌으로 머리가 충만해진다. 한동안 무엇을 쓸지 고민하다가, 나는 그 고민이 불현듯 바보같은 것임을 깨닫고는 담담히 이렇게 적는다.


몰리수는 사라졌지만, 몰리세이루는 남았다.



 

Av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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