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비우며
집을 비우는 것은 이별하는 것과 같다.
쓰다남은 샴푸를 버린다. 아직은 멀쩡한 자기그릇과 유리그릇들도 한꺼번에 모아 버린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직도 많이 남은 굴소스는 물론, 아내와 함께 공들여 만든 김치도 버려야 한다. 김치를 만들고 남은 고춧가루도 버린다. 각종 양념들도 모두 쓰레기 봉투로 들어간다. 틈틈히 모아둔 나무젓가락 앞에서마저 나는 주저한다. 그리고 딸아이의 장난감들 앞에 서자 나는 결국 주저앉고 만다. 이제 나는 불현듯 깨닫게 된다. 물건들도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별하고 있는 것이다. 23킬로라는 캐리어 무게 제한앞에서 나는 줄곧 냉정을 차리곤 했지만, 나라를 떠나는 순간에 마주하는 비움은 속으로는 울먹거리고 있을만큼 아직도 적응이 쉽지 않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물건들을 외면하고 또 이별하고 있다. 이별이 슬픈 이유가 사랑이 아까워가 아니듯, 나도 물건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물건들은 가족이 함께한 시공간을 담고 있다.
아마도 이십대에는 사랑하고 이별했었을 것이다. 그런 이별들은 스치는 봄바람에도 살이 에이는 고통이었리라. 그 즈음에는 사랑에 정착하면 이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대중가요의 풋풋한 사랑과 이별이야기는 이제 지나간 열차처럼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십대가 되었지만, 이별은 여전히 내게서 떠나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이십대의 이별은 사람과의 이별일테지만, 지금은 시공간과 이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별은 감내하기 힘들만큼 여전히 쓰리다.
포르투갈에서도 2년이 흘렀다.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했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작은나라이니 2년이면 전국 방방곡곡을 돌 것 같았지만, 나는 이곳에 여행하러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될 리는 없었다.
약 3년 전 유럽대륙의 최서단인 포르투갈에서 유학하기로 한 결심한 이유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다시 생각해본다. 스페인에서 근무하며, 제대로 여행해보지 못한 한을 포르투갈에서 풀기로 결심한 이유는, 다름아닌 코스타노바(Costa nova)에서였다. 아내와 나는 코스타노바를 처음 찾았을 때, 해변을 거닐며 감탄했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1년이 지나서 코스타노바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코임브라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마치 거짓말같았다. 그 후 포르투갈에 살며 아내와 나는 그저 커피를 마시러 갈 정도로 코스타노바에 자주 갔다. 그런데 지금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영화 '쇼생크탈출'의 팀로빈스가 지와타네호 해변을 걸으며 자유를 만끽하던 감정과 비슷했던 것 같다. 나는 분명 노예는 아니었겠지만, 어쩐지 자유가 무척 필요했다.
직업적인 이유로 2,3년마다 나라를 옮겨다닐 때가 있다. 2년정도가 지나면 지옥마저도 정이 들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정을 떼야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나는 언제나 그 순간이 두렵다. 돌이켜보면 포르투갈에서의 2년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2년일 것이다.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데, 이제 앞으로는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시공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우리는 이름모를 외딴 시골마을로 여행을 가서 함께 햄버거를 먹었고, 딸아이는 어느 해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아내는 언제나 예쁜 웃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찍고,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휴대폰의 저장용량이 가득찼다는 메시지에 어느새 멍하니 사진첩을 넘겨보고 있다.
언젠가 아버지의 임종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어느 한 가족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20년전쯤의 다큐였는데,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사십대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스무살즈음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에 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방송에서 그 아버지는 죽음을 믿지는 않지만,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그 방송을 보며 나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지금 나의 아내보다 어렸을 당시 그 남편의 아내는 남편의 임종 순간에 끊임없이 사랑한다며 울부짖었다. 그러니까, 20년 전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여행의 시공간이 꽃이 되기 때문이다. 시공간 자체로는 아무런 꽃이 되지 못한다. 그곳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꽃이 되지 않는 한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포르투갈 2년을 한 송이 꽃으로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집을 비우면서, 나는 아주 먼 훗날 결국 우리 가족이 이별하게 될 그 순간을 위해, 이제 한 송이 꽃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꽃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