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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태경 Aug 21. 2024

버티는 놈이 장땡.

문밖에서는 열대야가 지글거리든 말든, 방안은 밤새 틀어놓은 에어컨으로 아~~~주 션하다.

이렇게 눈뜨는 아침 기분이 따봉이니 에어컨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스치는 살갗도 뽀숑뽀숑 산뜻하다.  ‘조으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더듬거려 핸드폰을 찾아 누운 채로 화면을 켠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게 우선이다.

핸드폰 잠금화면(베이스기타를 메고 있는 나)도, 메인배경화면(오토바이를 타는 나)도 나.

숨쉬기 위해 마지막 끄나풀처럼 붙들고 시작한 것들이 나를 살게 했다.

식혜 속에 삭은 밥알처럼 매가리 없이 둥둥.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시간이 멈춰버린 듯 멍먹.

핸드폰 화면을 켜다, 내가 나를 본다.

대견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 내가 있다.

주문처럼 조으다.

조으다.

조으다.


베란다문을 열음과 동시에 미친 듯이 뜨거운 열기가, 열렬히 비집고 시원한 집안으로 들어온다.

말복이 지났는데도 여름은 열기를 놔주기 싫은가 보다.

그래, 어디 있을 만큼 있어봐라 그리 발버둥 쳐봐야 곧 가을은 올 테니까.

아무리 덥고, 힘들어 못살겠다 해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버티는 놈이 장땡인 게다.


지난 5월에 파인애플을 먹다 발견한 씨를 심었더니, 삼복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워내 키를 키우고 있다.

대견하기 그지없다.

베란다 한쪽에 하나둘 늘기 시작한 화초들 사이에 서서, 분무를 해주며 생명의 기운을 얻는다.




비행기 할인권이며, 여행 할인상품권 알람이 아침부터 요란하다.

심쿵!!!

살아 있음에 설렘도 있다.


맘은 벌써 비행기를 타고 푸른 하늘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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