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나왔던 동네... 라는데ㅎ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는 범골에서 유래되어 붙여졌다는 호동.
분가를 하기 전까지 내내 살던 동네다.
그립... 군.
일 때문에 같이 살던 객식구들과 세명의 삼촌까지 삼대가 시끌벅적하던 시절이 있었다.
도시근교라 해도 주위에 논밭이 있어 나름 딸기 서리 같은 것도 하다 주인 할아버지한테 들켜 줄행랑을 치고 모퉁이 돌아 턱까지 올라오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해봐야 서너 알 되는 물러 터져 버린 딸기를 보며 왜 그렇게 신나 했는지... 봄이면 원 없이 진달래를 따먹고(그래서 염소라는 별명도 있음ㅎ), 밤이면 아찔할 정도로 진한 향을 뿜어내던 하얀 아카시아 흐드러지게 피던 뒷산 약수터.
알록달록 깃발이 걸려있는 점집을 오르면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얕으마한 뒷산이 있다. 장래 희망이 이순신 장군이 되리라던 애들이 있었으니까 그 영향 때문인지 늘 전쟁놀이를 했다.
적의 고지를 정복한답시고 이 봉분 저 봉분 오르내렸던 무덤가. 어린 맘에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도 모르고 마냥 재밌게 놀았다. 역사 드라마에서 주워 들었을 대사들을 써먹으며 해가 나무들 사이로 스러질 때까지 놀았다. 그렇다고 늘 사이좋게 놀지만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칼에 맞아 누군가 울어버리면 상황은 극적으로 변해버리고 갑자기 해산이다. 집수리하고 남은 각개목을 다듬어 그럴싸한 장검을 만들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올랐을 이순신 장군이 되어 봉분 날맹이에 서서 어찌나 폼을 잡았더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 그지없다.
사진 한 장 남겨지지 않아서 아쉽기만 하다. ㅋ것도 여자아이가 그러고 머스마들하고만 놀고 다녔으니, 365일 한복을 입고 사시는 유교사상 투철하신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 때문에 늘 불만을 품고 입을 내밀어서 그런지 지금도 입술이 두툼하다.
여자라곤 할머니, 엄마, 나 빼고는 남자만 10여 명.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조선을 쿠데타로 세우고 반발하는 세력을 저지하고 사회기강을 바로잡으려고 도입되었다는 유교. 천자문ㆍ사서삼경을 외우게 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나는 필시 고려시대 사람이었으리라. 아님 100년 전 아우내 장터에서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기미년 3월 1일 태극기를 휘날리며 목이 터져라 독립선언을 외쳤을지도 모르겠다.(그럴 확률이 높은 것이 내 목청이 남다르게 우렁차고 큰 것이 전생의 업적 때문일지도ㅎㅎㅎ). 부디 일본 눔 앞잡이로 매국노만은 아니었기를 ...
동네를 조금 벗어나면 지금이야 도로 사정이 좋아졌지만, 그때는 교통량이 적고 노면 상태가 신작로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던 인적 드문 좁은 도로.
양옆으로 머리 크기만 한 넓적한 탐스러운 잎들이 동굴이 되어주던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플라타너스 나무가 좋다.
긴 머리 휘날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어느 날은 들장미 소녀 캔디가 되고, 꿈 많은 빨간 머리 앤이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되곤 했었다. 그때는 마냥 꿈꾸기만 했었다.
무엇을 꿈꾸든 행복했었다.
지금은 현실적인 꿈만 꾼다.
새롭게 만들어 내기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이익을 타진하는 게 먼저가 돼버렸다. 이익 타산에 맞지 않으면 주춤하고 물러서게 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꿈을 꾸라고 한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내 현실과 아이들의 미래는 다르길 바라는 바램때문이리라. 글을 써 내려 가다가 갑자기 막막해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용기 낸 삶을 살아왔는가?
꿈을 이뤄 전해 줄 무용담이 있는가?
물음표 두 개를 쓰는 데 한참이 걸렸다.
나이만큼 빠르게 흐르는 시간. 살면서 생긴 아집과 편견 때문에 몸이 조언 나부랭이도 거부하면서......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뽀송뽀송 솜털 성성한 얼굴에 꿈 많고, 호기심 가득한, 호랑이가 나왔다는 동네에 살았던 그 고집쟁이 소녀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