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겉만 보고 쿨해 보인다 하는데 그래 보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지 실상 속은 찌질이 밴댕이 속이다.
자존심이 뭔지 생긴 건 안 그럴 거 같은데 득 될 것도 없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니 내 얘긴들 남한테 하겠는가.
안 하던 짓을 하려면 잘 안된다는 말이 맞다.
나이 들어도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내 속 드러내기다.
나도 속이 터진다.
남 얘기는 그리 잘 듣고, 풀어주면서 내겐 어찌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힘들어도, 짜증 나도 아닌 척 마음 넓은 호인이기를 자처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쌓인 아닌 척, 착한 척, 괜찮은 척.
이런 ??척들의 무게감에 껍데기로 산 것만 같아서 나이 듦 앞에 마음만 조급하고 자학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사람은 많으나 진정 내 맘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벗이 없다.
학창 시절 벗에게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긴 두루마리 편지로 받은 적이 있다.
선희야, 지금은 어드매 살고 있느냐? 그리 가고 싶어 꿈꾸던 콩고엔 갔을는지... (혹여, 이 글을 읽는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면 꼭... 부디... 연락해주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면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앞으론 어찌 풀어나가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라는 문제지 앞에 답을 쓰지 못하고 있다.
선희는 해답을 얻었을까?
그런 밴댕이 속 좁은 내게 언니가 있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오랜 세월을 지내 오면서 피붙이 같은 사람.
지난 생에 복을 많이 지었는지 복중에 큰 복. 내겐 인복이 있다.
힘들거나, 즐거울 때, 속상해서 떼쓰고 싶을 때 일빠로 생각나는 사람.
즐겁다 하여 남 앞에서 마냥 티 내면 속없다 할까 봐, 속상해서 울고 싶은데 자존심 상하고 남의 눈이 신경 쓰여서 속으로만 찔찔거릴 때, 식솔에게는 속내를 털어놓지 못할 때면 으레 생각나는 한 사람.
‘언니,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랬어??? ㅜㅜ 된장, 쌈장, 고추장......'
쿵하면 짝을 해주니 속풀이 해장을 한 듯, 속이 시원해진다.
그런 소중한 사람인데도 속을 다 털어놓지를 못한다.
얼마 전에 긴 세월 숨겨왔던 얘기를, 사건이 터지면서 알리게 되었다.
어차피 좋은 일이 아니기에 숨겨놓은 얘기였는데 바보같이 혼자 속 끓이며 살았다고 서운해했다.
전생에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 남들이 친자매인 줄 안다. 한배에서 나왔어도 그처럼 가까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알았으니 언니 부모님(지금은 울 엄니만 생전에 계신다)은 내 부모나 진배없다.
언니네 엄니 제사음식도 만들고, 어쩌다 보니 아부지 임종도 내가 혼자 지켰으니 보통 연은 아니다.
그런 소중한 사람인데도 내 얘길 다 드러내고 살지는 못했다.
더더욱이 가족에 관련된 얘기들은 특히 더하다. 뭐가 흉이 될 거라고ㅜㅜ
진즉에 털어놓고 살았으면 이리 속이 타들어 가진 않았을 것이고, 가끔은 조언으로 해답도 얻어 현명한 결말을 얻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말이다.
‘후회하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새기고 사니 후회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안다.
속 좁은 사람인지라 일이 터지고, 맘도 몸도 상하니 때때로 후회를 아니 할 수 없다. 바보 같으니라고......
나이가 들면서 관계에 대해서 진지해진다.
곁에 두려 한다고 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어거지로 내친다 하여 끊어질 연이 아니라면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쓴다고 해도 잘되질 않는다.
늘 새로운 것에 가슴이 뛴다.
새 책, 신지식, 신퓨전 레시피, 젊은 친구들과의 신선한 대화, 새로운 타지로의 여행, 여러 분야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내가 살아있음을 상기시킨다.
허나, 무엇이든 새롭다 하여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장도, 김치도, 술도 묵어져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그중에 사람이 그렇지 않나 싶다.
내게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만큼,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줄 알고(적어도 꼰대 소리는 듣지 말자^^), 필요할 때는 용감하게 나아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알고, 지혜와 배려가 제대로 잘 버무려지고 삭아져 감칠맛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음미할 수 록 끌리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
언니야~~~ 춥다.
몸도 으실거리는데 얼큰한 칼국수 묵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