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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대숲은 바람을 잡지 않는다

by 캘리그래피 석산
‘대숲은 바람을 잡지 않는다’ 캘리그래피


두 스님이 시냇물을 건너게 되었다.


시냇가에 한 여인이 있었는데 물살이 세고 징검다리가 없어 발만 그르고 있었다. 한스님이 여인을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되니 서둘러 가자고 했다. 그러자 다른 스님은 그럴 수 없다며 여인을 업어서 건네주었다.


여인을 업지 않았던 스님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수도하는 몸으로 여인의 몸에 손을 대다니 자네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여인을 업었던 스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업지 않았던 스님이 더욱 화가 나서 두어 시간쯤 계속 잔소리를 했다.하는 수 없이 스님이 껄껄 웃으며 한마디 했다. “이 사람아. 나는 벌써 두어 시간 전에 그 여인을 냇가에 내려 놓고 왔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등에 업고 있는가?”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그뿐 대숲은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가 연못을 지나가도 스치면 그뿐 연못은 기러기의 흔적을 남겨 두지 않는다.


잠시 머무르는 시간만이라도 반갑게 맞이하고 소중히 간직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출처: 故황태영 수필가 ‘나의 봄은 당신입니다’ 북레터 중에서]


위 글씨 “대숲은 바람을 잡지 않는다”를 쓰면서 지난 2월6일과 7일에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섬으로 내려온 지 7개월이 되면서 처음으로 혹독한 겨울을 맞았다. 낮부터 내린 눈은 온 섬을 하얗게 덮었고 밤이 되자 눈은 도로를 결빙(結氷)상태로 만들어 고갯길을 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꾸자꾸 나아가려 하면 미끄러지며 후퇴하는 차를 보며 더 이상의 소모전은 의미가 없어 차를 남겨 두고 고갯길을 너머 터벅터벅 눈길을 밟으며 1.5Km를 걸어 집으로 와야 했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고 순한 바람이 불어 왔다.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눈은 녹아 들었고, 다시 그 거리만큼 걸어가 차를 가지고 왔다. 날씨는 잠시 좋았다가 오후가 되면서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종잡을 수 없는 이상기후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에는 두문불출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 섬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높이 100미터가 넘는 산등성이 눈길 위를 달릴 수 없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처음으로 겨울을 맞이했던 나는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점차 깨달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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