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조도 신전리(新田里):
신전리가 있는 신육리는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전리, 육동리, 읍구리를 병합하여 신전과 육동의 이름을 따서 신육리가 되었다.
북쪽의 신금산[232m]에서 뻗어져 내려온 산줄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남해가 펼쳐져 있어 배산임수 취락 입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일사량이 높고 북서풍 차단에 유리한 곳에 마을이 입지 해 있다. 특히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신전리 포구는 좌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돌출 해안을 이루어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함으로써 양항을 이루고 있다. 신금산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산릉선이 동서로 분기하여 신전리 마을을 좌우로 감싸고 있다. 바다에 접한 마을 앞 남쪽은 모래사장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있고 멀리 남해를 조망할 수 있다. 기반암은 화산쇄설성 역암이나 사암, 응회암, 유문암, 백악기 경상계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디지털 진도 문화대전]
진경우·김유미 부부가 섬으로 귀향해 살고 있는지 벌써 5년 차가 넘었다. 서울에서 향우회 모임 때 가끔 얼굴을 본 것 말고는 기억이 거의 없던 고향 후배다. 섬에서의 두 부부가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도시에서 살다가 내려오기까지 사연도 많았던 두 부부는 그중 아내 김유미 씨 장인, 장모의 서면 다짐을 받고서야 섬으로 내려올 수 있다고 했다.
“섬에 내려가면 내 딸에게 험한 바다 일은 시키지 말라”는 조건에 남편 진경우 씨는 서면 약속을 한 후 귀향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는 장인, 장모와의 약속을 확고히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8월의 섬은 대낮에는 더웠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서각 문패를 달러 가는 날 진경우 씨 집 화단에 석류가 빨갛게 익어갔고, 화단 옆에 진돗개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나를 반겼다.
집안 분위기는 아직도 신혼처럼 결혼사진들로 디스플레이가 잘 되어 있었고, 두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기 좋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미소를 잃지 말고 살자”가 진경우 씨의 평소 가슴속에 새기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서각 문패의 슬로건도 “늘 웃자^^”라고 해달라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늘 웃을 수는 없지만, 늘 웃으려고 한다”는 그의 말은 언제나 웃을 수 있는 날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 같아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