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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그래피 석산 Jan 13. 2019

제1화 아니 온 듯 다녀 가소서

크게는 삶에서 바람처럼 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떠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 작게는 집을 찾아오는 행인들이 바람같이 가볍게 왔다가 머문 듯 머물지 않은 듯 떠나가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는 후자에 맞는 글이다. 

석산 작가 자택 입구에 설치된 폐목 서각 작품 ‘아니 온 듯 다녀 가소서’

건 너 마을에 위치한 몽돌해변으로 향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날이면 반드시 해양 쓰레기들이 해변 위까지 차고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몇 번을 오고 가며 목격했기 때문이다. 바닷물에 퉁퉁 불어있는 폐목은 생각보다 많았다. 차에 싣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오랜 시간 풍파에 만신창이가 된 폐목의 재활용, 재탄생은 나에게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소중한 물건이라는 점과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서각 글씨를 새긴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우경 서각작가의 조언과 자문을 받아 처음 시도한 서각 글씨.. 참으로 재밌는 작업임에 틀림없었다. 1차원적인 종이 글씨와는 차원이 다른 3차원 입체적인 작업이 충분히 호기심 발동의 전주곡이었다. 


첫 번째 작업은 폐목 총길이에 비례해서 새길 수 있는 글자크기 및 글자 간격과 배열을 머릿속에 숙지한 후 서체를 써 파일 글씨로 변환 후 인쇄해서 폐목에 마스킹 종이테이프를 붙인 다음 그 위에 파일 글씨를 풀칠하고 끌로 적당한 깊이로 파는 작업이 수반된다. 여기서 폐목은 일반 나무에 비해 결이 고르지 못하고 중간중간 움푹 파인 부분도 있어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글자를 새기는 폐목의 뒷면은 송송 구멍이 나 있었고 개미들이 이미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좌) 앞면 ‘아니 온 듯 다녀 가소서’, (우) 뒤면 여기저기에 송송 구멍 난 개미집

양우경 서각작가에게 이러한 폐목 상태를 말하자 “그냥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했다. 그러나 난 이조차도 버리면 쓰레기가 아닌가?라는 생각 끝에 작업 강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각(刻)을 낸 글자에 흰색 유성페인트로 칠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서각의 시작은 거의 흥분상태였다. 작업은 이틀 만에 완성이 됐고 양 작가에게 완성된 서각 작품을 사진으로 전송했다. 양 작가는 “처음 해보는 서각 치고 생각보다 잘 나왔다고 서각장이의 끼가 보인다.”는 말로 서로 크게 한번 웃으며 이렇게 서각 처녀작이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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