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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묵(墨) 속에 갈아 넣은 정성이

by 캘리그래피 석산

일본 애도 시대 임제종(臨濟宗)의 거장이었던 반케이 선사에게 문둥이 한 명이 승려가 되겠다고 찾아왔다. 선사는 문둥이를 승려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삭발 의식에 들어갔다. 문둥이의 머리에는 울퉁불퉁한 딱지가 붙어 있었다. 농이 흐르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것을 본 지체 높은 부호가 얼굴을 찡그리며 역겨워했다. 그러나 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성스럽게 문둥이의 머리를 깎았다.


의식을 다 마치자 그 부호는 물을 떠다 놓고 선사에게 말했다. “선사님, 이 물로 손에 묻은 그 더러운 것들을 닦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선사가 대답했다. “진짜 더러운 것은 이 피고름보다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요즘은 모두 화려한 옷, 명품가방, 외제차, 잘 생긴 연예인 등 외형적,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요란하고 현란한 것들은 오히려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한다. 절이나 교회의 외관이 화려하고 크다고 구원의 힘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강한 절, 사랑이 큰 교회라야 한다. 포장지보다는 그 안의 내용물이 더 소중하다. 마음을 맑게 다듬어가야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사람 간의 사귐도 그렇다. 돈으로 하면 돈이 떨어지면 끝나고, 지위로 하면 지위에서 물러나면 끝난다. 마음으로 사귀어야 평생을 간다. 사람을 진실로 감동시키는 것은 팁이 아닌 마음이다.


곽거병(霍去病, 기원전 140년 ~ 117년: 전한 중기의 군인으로, 하동군 평양현(平陽縣) 사람이다. 전환의 무장으로 무제의 처조카이다. 아버지는 곽중유(霍仲孺), 무제 사후 정권을 장악한 곽광(霍光)이 있다. 작위와 시호는 관군경환후(冠軍景桓侯)이다. 하지만 신나라에 의해 사로잡혀 곽(霍)씨 가문과 곽거병 그리고 곽광의 후손들은 노비와 기생으로 전락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한나라 무제 때 곽거병(霍去病)이란 장군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어릴 때 매우 몸이 매우 약했기 때문에 병이 물러가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거병(去病)이라고 지었다. 그는 부모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자라 3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서역을 정벌하러 갔다. 그러나 기나긴 행군에 지치고 향수에 젖어 군사들의 사기는 형편이 없었다.


이때 황제가 곽 장군을 위로하기 위해 한 병의 술을 보냈다. 몇 명의 장수들과 모여 회포를 풀 수도 있었지만 곽 장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든 병사들을 사막의 오아시스로 모이게 하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오아시스에 술을 부우며 말했다. "이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라 황제께서 우리에게 하사하신 술이다. 다 함께 이 술을 마시고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자."


술 한 병을 섞은 것이라 3만 명의 병사가 술맛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마시는 것을 포기하고 병사들과 함께 하려는 장군의 마음이 녹아 있었기에 병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 술이 군사들의 전의를 불태웠고, 곽 장군은 서역 정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후 그 오아시스의 이름을 ‘술의 샘’ 즉 주취안(酒泉)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서역 실크로드로 들어가는 인구 20만 명의 중요한 도시가 됐다.


술보다 더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알아주고 아껴주는 마음이다. 진실로 그리운 것은 술이 아니라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따뜻함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려 할 때면 흔히 물질적인 것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고의 감동은 동냥 주듯 던지는 돈이 아니라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글자의 훌륭함은 자획의 기교가 아니라 묵 속에 갈아 넣은 정성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명품과 성형의 치장이 아니라 마음의 품격에서 우러나온다.

특히, 한글은 기존 어떠한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변천한 글자가 아니라 창제할 때부터 소리글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표기하고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한글처럼 특정한 사람과 시기에 독자적으로 새 언어를 국가 공용문자로 사용한 유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가족들의 아침 밥상도 사랑이 빠지면 개밥이나 다를 바 없다. 돈 아닌 마음으로 교류하고 외형보다는 마음을 먼저 가꾸어 가는 법을 깨우쳐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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