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매미는

by 작가 석산

울음소리가 요란한 여름이 다가왔다. 열대야와 겹쳐 밤잠을 설친다는 아우성도 나오는 계절이다. 무욕과 청빈의 선비로 존경받던 매미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선비도 매미도 이제는 모두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된 지 오래다. 그래도 그 정신만은 새겨가야 한다.

조선시대 임금은 평상복으로 정무를 볼 때 익선관을 썼다. 익선관은 매미 날개 모양의 모자로 매미의 오덕을 가슴에 새기고 정무에 임하라는 뜻이었다. 그 첫째 덕은 문(文)이다. 매미의 입은 선비의 갓끈처럼 곧게 뻗어 있다. 또 머리에 반문(斑紋)이 있으니 학문을 안다 하겠다. 둘째 덕은 청(淸)이다. 다른 생물의 피를 빨아먹지 않고 오로지 이슬만 먹고 살아가니 맑다. 셋째 덕은 염(廉)이다. 곡식이나 채소를 훔쳐 먹지 않으니 염치기 있다. 넷째 덕은 검(儉)이다. 달팽이 우렁이도 집이 있는데 매미는 집을 짓지 않고 사니 욕심이 없고 검소하다. 다섯째 덕은 신(信)이다. 살아야할 계절은 제 몸 던져 뜨겁게 살지만 떠나야 할 계절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떠날 줄 아니 신의가 있다.


매미의 인내심도 배워야 한다. 매미는 2주의 기쁨, 2주의 밝은 삶을 위해 7년 동안이나 땅속에서 어둠의 아픔을 감내한다. 쉽게 말하면 5.5일의 즐거움을 위해 1,000일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좋은 날과 힘든 날이 늘 교차하지만 그래도 저렇듯 터무니없이 힘든 날이 많지는 않다. 그러기에 때로는 잠시 어려워도 불평을 해서는 아니 된다. 매미의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떠올리면 감내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여름한철 매미는 긴 기다림의 울분을 털어내듯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산다. 한 서린 울음으로 또 해방의 노래로 주어진 시간을 온몸으로 불사른다. 매미는 비겁한 겨울을 살기보다는 당당한 죽음을 택한다. 정당이건 기업이건 패거리의 사익을 질타하는 오덕을 갖춘 여름매미의 치열한 외침이 있어야 한다.


매미는 죽어서는 개미의 밥이 된다. 죽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남에게 내어 준다. 그러니 어찌 선비의 표상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밤도 낮처럼 밝아졌고 열대야까지 덮치니 밤낮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매미는 밤에도 울 수밖에 없고 선비는 불의에 눈감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깨어나야 한다. 익선관을 쓰고 오덕의 깃대를 들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추악해져도 어찌 맑은 것과 흐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겠는가? 염치를 아는 선비가 어찌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겠는가? 힘들어도 신의를 지킬 때 좋은 향기가 난다. 맑고 곧은 매미의 오덕이 그 울음소리보다 크게 세상에 가득 울려 퍼지기를 소망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42 세상일에 부딪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