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캘리그래피 석산의 스토리 북

느림의 철학

by 캘리그래피 석산

토끼와 거북이 우화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빠름과 느림의 대명사인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대회에서 빠름의 토끼가 느림의 거북이를 당연히 이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거북이가 달리기 대회에서 승리한다는 내용.. 참 오랜만이죠.

정도와 인내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느림의 철학’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요즘에는 환경이 날로 급변하다 보니, 빨리 빨리라는 초박빙의 세상이 우리 주변을 엄습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서예를 느림의 예술이라고 해서 일일이 먹을 갈아가며 정신적인 안식과 집중력을 발휘함으로써 제대로 된 글씨가 나온다는 옛 성현들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모의 시대를 걷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본인 역시, 먹과 벼루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리 쉽게 오랜 시간 동안 먹을 갈아가며 글씨를 써 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왜! 그럴까? 필방에 가면 모든 게 다 갖춰놓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바퀴에 역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어느 순간 나름의 반성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옛 시절 몽당연필에 관한 향수와 추억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특히, 글씨는 여운과 여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리 고유문화의 상징이다.

어떻게 보면 서예가 추구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캘리그래피는 어떨까요?

단연, 문방사우를 상징하는 서예의 동양적인 정신문화를 뒤엎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 사람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서예에서 느끼지 못하는 느림의 미학이 깨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다고, 우리 생활에 있어서 쓰임새가 줄어든다고 그 가치를 외면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예는 나름의 정통성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한옥 안에서 맞는' 여유' 의 차 한잔

내가 피력하고자 하는 것은 빠른 세상 속에서 조금의 ‘여유’를 찾자는 것이다.

캘리그래피를 너무 쉽게, 편하게, 빠르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꼬집고 넘어가려는 것. 우리가 흔히! 빨리 먹는 음식이 체한다고 한다.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그 빠름속에는 걸러야 할 불순물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도 거르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한 템포 쉬어가는 느림의 법칙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한옥을 보면 느림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가끔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찾아 오르내리죠.

시간이 멈춰 선 느낌, 복잡한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곳, 한옥은 느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특별한 체험 공간이다.

바쁜 도시생활을 벗어나 한가롭게 펼쳐진 북촌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맑아지고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워가는 옛사람들의 꾸밈없는 정취가 묻어 나온다.


한옥 같이 느림의 여유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바다가 내려 다 보이는 내고향 행복한 섬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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