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결정체
노래를 부르는 가수만이 음정에 맞춰 리듬을 타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 한글은 선과 점이 조화를 이루는 곡선의 결정체다.
우리의 삶이나 자연조차도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선 또한, 곡선의 다른 각도에서 그려내고 시각화할 뿐이다. 태초의 인간은 곡선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학습 능력을 갖추며 진화해 왔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오감은 직선보다 곡선에 더 가깝게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물론, 세상에는 곡선만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다양한 폰트가 쏟아져 나오지만 본인이 지적한 리듬감이나 조화란 수직이나 직선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먼 산을 바라볼 때 크고 작은 숲, 그 속에 작고 큰 나무들, 큰 바위에서부터 작은 돌멩이, 침엽, 활엽, 하찮은 풀뿌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객체들이 조화를 이루고 의지함으로써 봉우리를 이루고 산이라는 큰 줄기를 구성하게 되는 것처럼...,
캘리그래피의 수많은 글꼴들이 이렇게 크고 작은 장단을 맞추면서 리듬을 탈 때 멋진 글씨로 탄생된다. 좀 삐뚤어진 글씨도 반듯하고 각진 인쇄 글씨 사이에 놓으면 아주 신선해 보인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바른 글씨 쓰는 법을 습관화하기 위해 연하게 그려진 인쇄 글씨를 그대로 따라 쓰는 연습을 하면서 글씨를 쓰기 시작하는데 좀처럼 반듯한 글씨를 쓰기가 무척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냥 연필심이 가는 대로 글씨를 쓰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캘리그래피는 그냥 손으로 쓰기만 하면 그뿐이다. 여기에 수평과 수직을 일부러 맞출 필요도 없다. 글씨의 형태가 어설프거나 세련되었다는 문제는
두 번째로 생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숙련된 글씨에는 노련함과 세련됨이 있을지라도 아이의 글씨에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이만의 동화가 있기 때문이다.
양귀비가 아무리 예쁘다 한들 난초의 지조와 고매함을 가질 수 없듯이, 사람마다 다양한 느낌의 글씨가 각진 글씨를 따라가지 못하고, 각진 글씨 또한 곡선의 글씨를 따라올 수 없는 것이 캘리그래피만의 특별함이다.